時事論壇/橫設竪設

오후여담亡徵

바람아님 2016. 11. 18. 23:36
문화일보 2016.11.17 12:10

박학용 논설위원

대형 사고가 터지기 전엔 반드시 그 전 단계의 징후들이 선행된다고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나라의 망조(亡兆)를 조목조목 적시한 중국 고전이 있다. 중국의 법가 사상가 한비자가 쓴 ‘한비자’다. 그는 이 책 ‘망징(亡徵)’편에서 나라가 망하려는 47개의 징조를 예시하면서 여러 개가 켜켜이 쌓이면 나라가 망한다고 경고했다.


한 달 이상 박근혜 대통령발(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오늘과 절로 오버랩되는 네 가지만 추려본다.

우선, ‘임금이 날짜나 시간 따위의 길흉에 마음을 쓰고 귀신에 혹하여 점쟁이 말을 믿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고 했다.


 ‘임금이 신하들의 의견을 들을 때 많은 벼슬아치의 말을 증거로 참고하여 알아보지도 않고 오직 한 사람만을 밖으로 내보내 정보를 얻는 창구로 삼는다면 그 나라는 망한다’고도 했다.


‘소국인데도 대국에 대해 겸손하지 않고 무력하면서 강대국을 경계하지 않고 탐욕적으로 서투른 외교를 해도 그렇게 된다’고 했다.

‘나라 금고는 비어 있는데 대신들 창고는 가득하며, 생업에 전념하는 백성은 가난한데 유랑민은 외려 돈이 많고, 농사일을 하거나 전쟁이 나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자들은 천대받고 있는 반면 대단치 않은 직업에 종사하는 자만이 부자가 되는 나라는 망한다’고도 했다. 곱씹을수록 소름이 돋는 대목이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가 지적한 나라를 망하게 하는 ‘7대 사회악’도 우리의 너저분한 자화상과 판박이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富),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성 없는 경제,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신앙’. 박 대통령은 지난 2014년 1월 인도의 간디 추모공원을 참배한 뒤 현지 관계자로부터 묘지 기념석에 새겨진 이들 자구(字句)에 대한 설명을 듣고선 이렇게 화답했다. “지금까지도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다”. 그때 박 대통령이 간디의 준엄한 일침을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최순실의 국정·국기 농단도 없었을 텐데 하는 부질없는 가정도 해본다.


‘백성의 입을 막기란 물길을 막기보다 힘들다(防民之口 甚於防水)’. 역대 중국 지도자들이 침대 옆에 두고 틈만 나면 읽는다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이다. 한번 민심을 잃으면 홍수보다 더한 재앙이 몰아닥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정점을 찍는 한마디. ‘가장 못난 정치가는 백성과 다투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