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1.17 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중국의 간판 뉴스채널 관영 CCTV-13은 최순실 사건을 '하오유간정(好友干政)'이라 한다.
'친구가 국정을 갖고 놀았다'는 의미다.
전 세계 언론이 분초를 다퉈 미국 대선 개표상황을 전한 지난 9일도 CCTV-13의 메인 뉴스는
하오유간정 사건이었다. 광화문 시위 모습과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의 귀국 소식,
삼성그룹 압수수색 장면이 지겨울 정도로 반복됐다.
그에 비하면 미 대선 뉴스는 거의 단신 취급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뉴스가치 판단은 공산당 선전부가 한다.
세계 최강 미국을 누가 이끌게 됐느냐는 것보다 최순실 사건이 더 중요하기라도 한 것 같은 뉴스 배치다. 그래서였을까.
한 교포 주부는 "할인점에 갔다가 종업원으로부터 '너희 대통령은 누구 비서니?'라는 비아냥을 들었다"며 분개했다.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한때 '큰누나(大姐)'로 불렸던 박근혜 대통령은 '아줌마(大媽)'를 거쳐 요즘 '바보(傻)'로 불린다.
이런 조롱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을 다시 봤다"는 긍정적 견해도 있다.
중국의 한 중견 언론인은 "최순실 사건이 결코 웃음거리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순실 사건 보도를 보면 중국에는 없는 것들이 보인다. 의혹을 파헤치는 언론, 권력에 칼을 겨누는 검찰,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벌이는 질서 정연한 시위가 그것이다."
그는 "한국을 절대 비웃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중국 지식인 사회 여기저기서 들린다"고 덧붙였다.
조롱하기 바쁜 중국 일반인들과 달리 지식인들은 최순실 사태에 대응하는 한국 시민사회에 내재한 장점들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게 우리에게 위로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그들이 하지 않은 아픈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해야 한다.
'왜 한국 언론은 진작 최순실 일당의 농간을 일찌감치 알아채지 못했나.'
'왜 한국 검찰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했나.'
'왜 광장에서는 일류시민인 한국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선 비리와 유착에 제동을 거는 양심적인 내부고발자가 되지 못했나.'
지난 주말, 광화문은 촛불을 든 시민으로 가득 찼다.
1987년 6월 항쟁 때 이 거리를 메웠던 청장년들이 이번엔 자녀를 데리고 다시 나왔다.
그들의 분노가 민심을 배반한 대통령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을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우리 각자는 앞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최순실 일당을 둘러싼 침묵의 카르텔이 어떻게 형성됐고,
그것이 우리 사회 감시와 비판·내부 고발 체제를 어떻게 이처럼 오랫동안 마비시켰는지 밝혀야 한다.
근본적이고 뼈저린 성찰과 그에 따른 변화를 통해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30년 뒤 또다시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게 될지 모른다.
최순실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가장 좋았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우리 각자가 민주적 가치에 더 충실한 시민이 되고,
더 나은 민주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무너진 국격을 가장 빨리 일으켜 세우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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