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현재(玄齋) 심사정의 그림 및 작가읽기

바람아님 2013. 8. 14. 14:17

 

 

조선시대 동양화 현재(玄齋) 심사정의 그림 및 작가읽기

 

심사정의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증조부가 영의정의 지낸 집안 출신이었으나 할아버지가 과거 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이어 그 실수를 만회하려고 하였는지 숙종시절에 경종과 연잉군이 대립하고 있을 무렵에 왕세자 연잉군의

살해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적발되서 역적으로 몰려 폐족이 되고 말았다.

선비가 상업에 종사하지 못하던 때라 벼슬길이 막혀 그림을 그려서 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게 팔았다고 한다.

그후에 그림솜씨가 알려져 임금의 어진을 그리는 역할을 하는 벼슬길에 나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폐족이된 가문으로

조상의 죄로써 그는 나아갈 길이 없었다.

 
           심사정의 작품 세계는 그의 스승인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가 박진감이 넘치고 사실성, 현실성에 바탕을 두었다면,

           심사정의 작품은 철학적, 관념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명상적이고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경구팔경도첩>중 *장안정경, *강암파도  - 종이에 담채 1768년(62세)

진경산수화는아니지만 실경을 아름다운 보편적 풍경으로 재해석하였다.

조용한 도성의 풍광과 도도한 강물결에 휩싸인 험한 바위등이 절세의 명품이다.

 



 

<선유도> 종이에 담채  1764년(58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재의 능숙한 필치가 한껏 살아난 명작.  뱃놀이를 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선비의 이상을 그린것이다.  간혹 현재에게서 조선산수화가 아닌 중국 냄새가 난다며

비판 받곤 했지만 그가 지향한 것은 중국의 화풍이 아니라 보편적 이상의 세계였다.

 

 


 

 


 

<명경대>  1750년

금강산 여행 후 심사정이 그린 여러 금강산도 중 하나.

그의 스승인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과 비교해도 재밌을 듯.

불필요한 표현은 과감히 생략하고 표표히 그린 산맥에서 강한 개성이 보인다. 

높은 명경대 봉우리와 그 곁을 힘차게 흐르고 있는 만폭동을 아래에서 선비들이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다. 안내자가 금강산 유람을 온 세 명의 선비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

뒤에 있는 다섯 승려들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경구팔경도첩>중 *밤섬

강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잘 살아있다.

화풍이 세련되고 고상하며 여백美가 뛰어나다.

 

 


<방미남궁산수>

 

송나라 미불의 미점법을 묵법으로 변용, 그윽한 여름날의 산수를 그린 작품이다.


 


 

<강상야박도>  비단에 담채   1747년(41세)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현재의 우울한 나날의 심사가 화면 가득 배어 있는 듯한 어두운 분위기의 산수화.

밤풍경이라선지 화면이 더욱 무게있게 느껴진다. 화면이 어두워 잘 안보이나

강변에 머문 배에 뱃사람도 고적하게 앉아있다.

 

 


 

<설경산수도>   종이에 수묵 담채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왼쪽에 보이는 작은 인물들은 필경 이른 봄 매화를 찾아나선 선비와 그 하인인 듯.
눈 덮인 나무와 산봉우리들, 부드러운 곡선이 설경에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파교심매도>  비단에 담채  1766년(60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매황꽃을 찾아 파교 다리를 건너가는 맹호연의 고사를 그린 것으로

필치가 완숙하게 무르익어 겨울날의 시정이 물씬 풍긴다.

 


 

<방심석전산수도>

 

웅장한 산과 절벽을 그려내는 중국화가의 그림을 보고 그렸지만 심사정은 온전히 자신만의 화풍으로

표현했다. 첩첩산중 속의 작은 초가집에서 물소리를 벗삼아 글을 읽고 있는 선비의 모습을 그리면서

심사정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마 세상과 동떨어진 자신의 처지를 그리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