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07 선우정 논설위원)
세상이 뒤집혀도 집안 싸움이 벌어지면 끝 모를 극단까지 간다
이 독특한 변화에 세계 기자들이 서울로 들어오고 있다
한 달 남짓 일본 언론인의 방문이 잦아졌다. 현직 기자도, 퇴직 프리랜서 기자도 서울을 찾는다.
일본 언론사는 보통 특파원 2~3명을 한국에 두고 있다. 요즘 서울에 오는 이들은 별도다.
출판사나 잡지사의 기사 부탁을 받거나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현장을 찾았다.
그동안 나에게 여덟 명이 연락을 했으니 상당수 일본 기자가 현장을 훑었을 것이다.
양국을 오가면서 여섯 차례 집회 중 네 차례 집회를 현장에서 취재한 사람도 있다.
일본 언론인을 접할 때마다 장인과 같은 부지런함과 왕성한 정보 욕구에 놀란다.
내가 만난 기자들이 던진 공통 질문은 두 가지였다. 먼저 '한국 정치에선 왜 이런 비리 사건이 반복되는가?'
일본의 민주주의는 70년, 한국은 30년이 흘렀다.
민주화 30년 후 일본에서 일어난 정치 스캔들을 떠올리면 한국을 어느 정도 이해할 것이라고 돌려서 답했다.
썩은 일본 정치가 정화된 것은 민주화 50년에 다가가는 시점이었다.
다음 질문은 '누가 차기 정권을 잡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알 리 없다.
그저 "한국 정치의 시간은 일본보다 길다"고 답한다.
한국 정치 풍토에서 지금 부는 바람을 근거로 미래의 풍향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본은 여러모로 앞서가는 나라다. 여전히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 하지만 관심은 반대로 흐른다.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언제나 크다. 외교·안보에 대한 일본의 가치 설정이 한국보다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주권선(主權線)' '이익선(利益線)'이라는 과거 일본의 안보 개념을 언젠가 칼럼에서 소개한 일이 있다.
주권선은 일본 본토, 이익선은 일본 본토의 안전을 위해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할 지역을 말한다.
이 말을 입에 올리지 않지만 지금도 일본은 이 선을 따라 치열하게 움직인다.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되자 체면과 관례를 무시하고 총리가 뉴욕으로 달려간 것도 이 때문이다.
얄팍해 보이지만 그들의 생존 방식이 그렇다.
한반도는 일본의 이익선 안에 항상 존재해 왔다. 그들의 관심은 이런 차원에서 전개된다.
그래서 정세가 흔들릴수록 관심은 커지고 연구는 깊어진다.
세계가 하나로 돌아가기 시작한 19세기 중반부터 특히 그랬다.
일본 구마모토의 동심(同心)학교가 조선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게 1879년이다.
이때 조선말을 익힌 사람들이 한반도로 밀려와 첩자, 기자, 밀사, 대륙 낭인 등으로 역할을 바꾸면서
한반도 정보를 긁어모았다.
얼마 후 식민 지배의 첨병 노릇을 했지만 초기부터 관심이 오염된 건 아니었다.
이들 중 기쿠치 겐조란 인물이 있다.
젊은 날 조선 땅에 뛰어들어 바닥에서 민심을 파악했고 위로는 대원군까지 줄을 대면서 명성황후 암살에도 가담한 괴물이다.
수십년 동안 축적한 정보와 탄탄한 현장력으로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중 '대원군전(傳)'은 황현의 매천야록과 함께 명성황후의 흑(黑)역사를 지금 우리에게 전한 대표적 야사(野史)다.
최순실 사건으로 요즘 화제가 된 '무당 진령군' 이야기가 여기에도 자세히 서술돼 있다.
이런 악의적 기술이 지금껏 좀비처럼 살아 꿈틀댄다.
관심과 정보에서 당시 일본에 압도당한 탓이다.
학문과 연구는 말할 것도 없다. 역사학은 여태껏 그 틀 속에서 싸우고 있다.
19세기 외부를 향한 관심의 비대칭이 20세기 초 나라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 서울을 찾는 일본 기자들이 당시처럼 악의적이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호의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가 스스로 드러내는 치부가 가감 없이 일본 방송을 타고 전달된다. 비웃음의 대상이다.
신문은 그런 식으로 빈정거리지는 않는다.
다만 문제를 정치권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광장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낸다.
어느 일본 신문 기자에게 '민주주의의 승리'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자 "아랍의 봄도 아니고 지금 한국이 그런 식으로 자랑할 수준은 아닌 듯하다"고 했다.
그들에겐 민주주의가 아니라 '한국이 어떤 모양으로 변할까'가 중요한 듯했다.
그 변화가 일본의 득실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타자(他者)의 시선이다.
하지만 이방인의 관심이 때론 우리가 놓치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은 객관적으로 일본보다 작은 나라다. 일본보다 개방됐고 위치도 위험하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늘 내부에 갇혀 있다.
집안 싸움이 일어나면 끝도 모르는 극단까지 쓸려간다. 지금 세상은 격변기다.
우리가 세상 밖으로 나아가 그들이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적응하는지 연구해야 내일의 생존이 가능하다.
그런데 세상과 담을 쌓고 우리 논리로 싸우고 변하려 하고 있다.
그 독특한 변화가 궁금해 세계의 기자들이 서울로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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