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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한민국… ] "굴욕감에 광장을 가득 채운 분노… 이젠 理性의 민주주의 작동할 때"

바람아님 2016. 12. 6. 09:29

(조선일보 2016.12.06 어수웅 기자)


"굴욕감에 광장을 가득 채운 분노… 이젠 理性의 민주주의 작동할 때"


[위기의 대한민국… '보수의 길'을 묻다] [8] 유종호·前 예술원 회장


"우리 국민들 시민 정신 성숙… 보수·진보 모두 전면 보수해야"


"성공한 민주제는 로마처럼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겪고도 여기까지 온 나라가 아닌가.

세계 어디를 다녀봐도 이만큼의 자유 속에서 무던하게 살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비관론은 금물이다."


예술원 회장을 지낸 유종호(81) 전 연세대 석좌교수는 5일 서울 광화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비관' 대신 '희망'을, 

'충동' 대신 '이성'을 제안했다. 10대에 광복을, 20대 중반에 4·19를 맞았던 유 교수는 친일파 청산·박정희 정권의 

공과(功過) 등 민감한 현대사에 대해서도 무조건적 부정이나 일방적 미화를 경계하는 균형 감각의 글쓰기로 

신뢰를 얻은 원로 문학평론가다.

5일 광화문에서 만난 유종호 교수는“충동의 민주주의보다 이성의 민주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5일 광화문에서 만난 유종호 교수는“충동의 민주주의보다 이성의 민주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조인원 기자


―이번 촛불 시위를 바라보는 시각은.


"음산한 소식을 접하면서 국민은 참담한 굴욕감을 느꼈다. 속된 말로 '같잖은' 인물이 흑막의 주인공이란 사실에서 

오는 모욕감이다. 이 모욕감과 분노가 촛불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4·19 때와 비교하면 어떤가.


"4·19, 1964년 한·일 협상 반대운동, 1987년 민주화 운동 등 우리에게는 무수히 많은 시위와 데모가 있었다. 

시민적 자유를 향한 정의감의 폭발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단, 이번 시위는 불상사 하나 없는, 질서정연한 의사표시다. 전례 없는 일이다. 현명한 시위에 안도하고 있다. 

단, '광장'은 기본적으로 충동의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다."


―충동의 민주주의라면.


"4·19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서울대 불문과 김붕구(1922~1991) 교수가 이런 고백을 쓴 적이 있다. 

'죽어도 좋다'는 감격과 흥분을 거리에서 느꼈다고. 

하지만 독일 지식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이 말했듯, 민주주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이성의 민주주의와 충동의 민주주의. 이제부터는 이성의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할 때다."


―촛불을 의식하는 정치인들의 선명성 경쟁도 치열하다.


"광복 직후와 4·19 직후는 백화제방(百花齊放)의 무한자유시대였다. 

해방 후에는 난립한 정당만 500여 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럴 때일수록 강경한 어조로 노이즈 마케팅하는 선동가가 다수 등장했다. 물론 대부분 역사 뒷골목으로 사라졌다. 

히틀러 같은 정치 괴물도 그렇게 합법적으로 정권을 획득하지 않았나. 

고대 아테네에서 도편추방제도를 도입한 것은 이런 선동가를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이번 시위에서 보여준 성숙한 시민 정신은 그런 무책임한 선동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80대 원로로서 후배 세대에게 과거에서 얻은 교훈을 전달한다면.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아무도 묻지 않는 것에 대답하는 귀머거리와 같다'고.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게 부질없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태어나 살아가려면 항상적 위기에 대한 내성(耐性)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현재의 정치인들이 풍전등화 같은 구한말 당쟁 전문가들과 무엇이 다르냐 묻고 싶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는 보수 전체의 실패인가.


"박근혜 정부의 성립에 기여한 유권자들을 보수라고 본다면 보수의 실패다. 

하지만 차선을 선택한 다수자의 기여를 통해 박근혜 정부가 성립되었음을 고려한다면, 

게 보아 한국 정치의 실패다."


―보수 진영은 무엇을 보수(補修)해야 할까.


"현 여당을 보수, 야당을 진보라 하는 현행 속칭은 별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을 역사화하고 상대화해서 보아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정이양 이후 1962년 대선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선택한 사람들은 세칭 진보 세력이었다. 

시 상대 후보였던 윤보선씨가 구태의연한 보수 세력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중국 문화대혁명을 동경한 이들을 진보라 하는 것도 언어 오용이다. 

문화대혁명이 얼마나 거대한 과오였는지를 중국 공산당도 인정하지 않았는가."


―진보의 보수(補修)도 필요할까.


"세칭 보수도 진보도 전면적 보수가 필요하다. 

그들이 학생 시절 귀동냥한 정치 어휘와 패러다임에 의존해서는 현실 파악이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세대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지난여름 이탈리아 밀라노에 갔더니, 교포가 2000명인데, 그중 500명이 학생이더라. 

세계 도처에 퍼져 있는 이런 젊은 세대가 우리의 미래 자산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 길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사실 민주제는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운 제도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도 나치의 정치적 야만이 모든 봉건적 잔재를 송두리째 파괴한 후에야 

전후의 서독 민주제가 확립되었다고 사회학자 다렌도르프는 지적했다. 

안타깝지만, 아까 말한 '같잖은' 인물이 현실에서 준동하는 것이 역사다. 

현실 교육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우리 조상은 어려울 때마다 '이 고생을 옛 이야기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란 말로 자신을 위로했다. 

이 위기가 일천한 우리 민주제 시험 과정의 시련이라 보고, 

이성적으로 대처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으리라 생각한다."




[위기의 대한민국… '보수의 길'을 묻다]

 

[1]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 "국민보다 수준이 훨씬 낮은 사이비 保守 정치의 실패"

[2]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 "정치가 '私的 사업' 전락해 국가표류…이익보다 가치 따지는 新보수로 가야"

[3] 복거일·소설가 : "지도자 잘못 뽑은 보수, 성찰할 때… 보수가 지켜야할 가치 훼손은 안돼"

[4] 강원택 서울대 교수: "'국가가 끌면 시민은 따라야' 思考 버리고 비정규직 등 청년 고민도 껴안는 保守로"

[5] 소설가 이문열 :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

[6] 김호기 연세대 교수 : "市場보수·安保보수를 넘어서는 혁신 보여줘야 위기 탈출"

[7] 박지향 서울대 교수 : "따뜻하고 도덕적 보수로 거듭나 양극화·청년층 좌절 치유해야"

[8] 유종호·前 예술원 회장 : "굴욕감에 광장을 가득 채운 분노… 이젠 理性의 민주주의 작동할 때"

[9]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 "권위주의 아닌 민주적 보수로 내각제·완전국민경선 도입을"

[10·끝]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 : "조선시대 史官은 임금 감시한 'CCTV'… '권력의 맛' 경계한 선비정신 되새겨야"





[중앙시평] 


21세기 한반도의 지정학(2016.1203)

중국의 속셈(2016.0220)





블로그 내 보수.진보 논쟁을 위한 고전 :

이들의 '밥상머리' 논쟁에서 보수·진보는 탄생했다



美독립과 佛혁명의 격동기 속에서 보수·진보 사상적 기준 제시한 버크·페인의 논쟁 추적


에드먼드 버크와 토머스 페인의 위대한 논쟁|유벌 레빈 지음

조미현 옮김|에코리브르|352쪽|1만8500원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

에드먼드 버크 지음|이태숙 옮김|한길사|396쪽|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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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인권/ 토머스 페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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