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15 이하원 논설위원)
텍사스, 엑손모빌, 러시아.
앞으로 4년간 세계 언론에 자주 등장하게 될 미 국무장관 내정자 렉스 틸러슨(Rex Tillerson) 관련 키워드다.
모두 석유와 관련돼 있다. 그의 고향 텍사스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석유 도매상이 본부를 두고 있는 지역이다.
틸러슨은 1975년 세계 최대 석유 회사 엑손모빌에 입사했다. 40년 넘게 근무했다.
회사 중역으로 수시로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국영 석유 업체 인사들과 거래했다.
▶그러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절친이 됐다. 2013년 러시아로부터 '우정훈장'도 받았다.
미 재계의 대표적 친(親)러 인사로 공인시켜준 훈장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서방은 러시아를 제재했다.
그 제재에 대한 비판 여론을 주도한 사람이 틸러슨이었다.
공화당 원로들은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살인자 푸틴과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틸러슨 기용은 그의 '친러 반중(反中)' 입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세계 각국 지도자 가운데 높게 평가하는 인물이 푸틴이다. 반면 시진핑 주석에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건드리며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가 '러시아를 중심으로 중국 포위망을 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선 승리 직후 그를 찾아가 밀착 관계를 과시한 아베 일본 총리가 오늘 푸틴과 만나는 것도 심상찮아 보인다.
▶우리 정부의 틸러슨과의 접점은 외교부가 아니라 지식경제부로 불렸던 산업통상자원부가 갖고 있다.
틸러슨은 2008년 8월 조지 부시 미 대통령 방한에 맞춰 인천공항에 내렸다.
첫날 이재훈 지식경제부 2차관을 만났다. 이 차관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틸러슨은 소탈했다.
통역없이 커피 두 잔, 쿠키 한 접시를 놓고 30분간 대화했다.
그가 "한국 에너지 기업들이 좀 더 경쟁하도록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MB 정부의 자원 개발에 대해선 빙긋 웃을 뿐 별 코멘트가 없었다.
자원 개발 분야에서 미국을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 이 전 차관의 기억이다.
▶틸러슨은 다음 날 거제의 삼성중공업 조선소에 내려갔다.
시간 동안 엑손모빌이 주문한 LNG 선박을 샅샅이 둘러보고 떠났다. 이게 지금까지 파악된 그의 한국 관련 행적 전부다.
미 대통령 당선인이 러시아를 친근하게 생각하는 것부터가 이례적인데 국무장관엔 친러 인사가 낙점됐다.
한국 정부가 갖고 있는 기존 외교 패러다임으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국내 문제로 우리끼리 치고받는 사이에 외교의 '퍼펙트 스톰'까지 몰려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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