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6.05.21 졸리앙 스위스 철학자)
하루 한번 외로운 사람과 통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간디가 유명한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독재자는 나의 내면의 고요한 목소리다.”
하지만 이 소란스러운 일상과 웅성거리는 정신세계, 야단법석인 감정상태 속에서 어떻게 그 목소리를 감지하나.
누구나 귀 두 짝 달고 세상에 태어났건만 우리는 그것의 적절한 활용법을 갖추지 못했나 보다.
최근에 파리를 여행하면서 불행히도 이젠 아주 흔하게 돼 버린 끔찍한 장면 하나를 목격했다.
어느 카페였는데 세련미 넘치는 젊고 아름다운 두 연인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저녁 내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거다. 정말로 두 사람은 단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다.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까. 뼈와 살을 갖춘 존재와 가까워지려면 정녕 발상의 전환이라도 필요하단 말인가.
나 또한 카카오톡 매니어이기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충분히 불편할 것도 같다.
그런 만큼 두 귀를 활짝 열고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침묵을 거북해하는가.
조금만 지루해도 발작하듯 견디지 못하는 이유가 무언가.
끊임없이 어떤 일로 바빠야 하고, 다른 무언가에 정신을 팔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이 기분은 대체 어디서 오는가.
귀를 기울인다는 것, 다시 말해 ‘귀 두 짝 달고 세상에 난 값’을 다한다는 것은 우선 입 닫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요,
마음의 깊은 바닥으로 과감하게 내려갈 용기를 갖는 것이다.
말을 멈추려면 먼저 하루 종일 내 안에서 잔소리만 늘어놓는 멘털 주파수를 단호하게 오프(OFF)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딱 5분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라.
온갖 낯익은 상상의 괴물들이 들고 일어나 당신을 못살게 굴 것이다.
정확하게는 당신의 불안과 기대, 두려움과 불만족에 익숙해진 당신 스스로가 그것들을 적(敵)이 아닌 모종의 메시지로
읽고자 애쓰고 있다. 도대체 그것들이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준단 말인가.
우리가 살아갈 길에 관해 무엇을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일상의 탐욕·불안·고통·변덕일랑 그냥 지나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 안을 휘젓는 모든 것에 맞서지 마라.
나를 언짢고 불편하게 만드는 괴물들, 따지고 보면 그리 대단한 놈들이 아니다.
다만 내가 그들을 주목하고 자꾸 되새김질하느라 정작 깊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할 때 고통이 시작된다.
기도는 원래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식당·놀이터·성당·절, 어디에서든 상관없다.
성 베네딕투스의 말대로 마음의 귀를 열면 그것이 곧 기도다.
나만의 바람을 이루기보다는 이루어지는 모든 일에 내 마음을 여는 것.
당장 우리 삶에 주어지는 모든 만남의 기회를 소중한 선물로 끌어안는 건 어떤가.
인간관계를 이어 준다고 자처하는 온갖 기괴한 장치, 그것에 중독된 우리를 치유할 해독제는 얼마든지 있다.
스마트폰은 잠시 꺼두고 사랑하는 사람, 다정한 친구와의 한 끼 식사에 올인해 보자.
차 한 잔 마셔 가며 담소할 여유조차 없을 만큼 내가 긴밀한 연결망에 속하지 않아도 이 아름다운 푸른 별은 잘만 돌아간다.
당신의 스마트폰이 진정한 기쁨과 자유, 연대의 훌륭한 도구가 될 수도 있긴 하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하루에 한 번,
저장된 연락처 목록에서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외로운 처지에 빠진 사람을 한 명 골라 전화 한 통화 날려라.
그리고 잠시 그와 수다를 떨어라.
그러는 가운데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으로, 그의 목소리에 정성껏 귀 기울여 보라.
졸리앙 스위스 철학자 / 번역 성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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