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의 마개를 뽑듯 낡은 사고의 마개를 뽑아버리자
사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것도 모자라, 남의 의견 표명에 습관적으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을 일종의 소통처럼 착각하기 일쑤다.
몇 주 전부터 침대 머리맡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들춰 보는 소설책이 한 권 있다. 노동계층 가정을 배경으로 한 어떤 소년의 성장기인데,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동성애적 정체성에 눈을 뜬 소년이 사회적 편견에 맞서 힘겹게 싸워나가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소설은 우리에게 뼈 있는 질문들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주 남의 감정과 언어를 마치 나의 것인 양 차용하며 살아가는가. 우리는 공론(public opinion)이라는 미명하에 누구를 배척하고 있으며, 누구를 학대하고, 누구를 소외시키며 살고 있는가.
인간의 존엄이란 각자 통념의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결정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로 지탱된다.
물론 외부의 압력을 걸러내는 것이 항상 수월할 리는 없으며, 로봇이나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과 종종 맞닥뜨리곤 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말했다지 않은가, 지혜로운 인간일수록 계산된 방향으로 당구공을 어김없이 굴러가게 만드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나와는 다른 인생관과 다른 성 취향, 다른 의견을 아무 편견 없이 포용하겠다는 것도 새해를 멋지게 장식할 각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회적 억견(doxa)과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 그리하여 자기 성찰을 통한 사고를 철학의 기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와 데카르트는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 니체는 우리 안에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은 도덕적 가치마저 재고해 볼 것을 제안한다. 우리는 과연 어떤 척도를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는가. 선악에 관한 우리의 비전은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인가.
무조건 다르다는 이유로 내치기 전에, 각자의 주어진 관점을 절대화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만사 거기서 거기라는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고서도,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 방식을 향해 열린 자세를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자유로움이란 그처럼 열린 자세 속에서도 세상의 소음에 무분별하게 휩쓸리지 않을 때 가능하다. 자칫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말과 생각인 양 착각해 주관을 잃지 않아야 참다운 자유로움을 구가할 수 있다.
2017년이 밝았다. 여기저기 샴페인 마개 따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샴페인 마개를 따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각자 욕조의 마개를 뽑듯 정신의 마개를 뽑아버리는 것은 어떤가. 알게 모르게 중독돼 온 낡은 관점과 사고들, 의식의 욕조를 가득 채운 통념의 땟국물을 새해를 시작하며 시원하게 비워내는 것은 어떤가.
스위스 철학자/번역 성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