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1.09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5세 즉위한 무능 국왕 루이 14세
그가 신임했던 재상 등 측근들… 앞에선 충성, 뒤에선 파벌 지어 蓄財
佛 사회 전체가 부패에서 못 헤어나 왕조 붕괴와 나폴레옹 독재로 귀결돼
개혁 골든타임 놓치면 우리도 같은 꼴
역사는 반복되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완전히 똑같은 사건이 반복될 수는 없다.
다만 모든 사회에서 비슷한 현상들이 일어나기 마련인지라 역사가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뿐이다.
박근혜 정권을 보며 "짐이 곧 국가다"라고 했던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루이 14세 시대를 연상한다면
다소 생뚱맞아 보일지 모르지만 분명 서로 통하는 면이 있다.
무능한 통치자와 그 주변에서 설쳐대는 모리배들, 부패한 엘리트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루이 14세는 겨우 다섯 살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자마자 '프롱드의 난'이라 불리는 거센 봉기에 직면했다.
이 힘든 시기에 헌신적으로 국왕을 보필한 이는 재상 마자랭이었다.
루이는 마자랭을 아버지처럼 따르면서 통치술을 배워갔다.
국왕이 스물두 살이었을 때 마자랭이 죽자 루이는 자신이 직접 통치를 하겠다는 친정(親政)을 선포했다.
이때 가서야 그동안 마자랭이 어떤 식으로 일해 왔는지 밝혀졌다.
그동안 마자랭은 3500만리브르의 재산을 모았는데, 이는 프랑스 권력형 비리 가운데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마자랭은 앞에서는 몸바쳐 국왕을 돕는다고 하면서 뒤로 엄청난 부정부패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부실한 국가 기구가 원인이었다.
세금을 효율적으로 걷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재정가(financier)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유한 계층에서 거액을 모아 국가에 융통해 주는 대신 세금 수취 권리를 받아 빌려준 돈보다 훨씬 더 큰 액수의
돈을 거둠으로써 고수익을 얻었다. 쉽게 말해 국가 재정 체제를 이용해 돈놀이를 하고 있었다.
루이 14세. /조선일보 DB
행정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관료제가 잘 운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순전히 파벌들의 놀음판이었다.
마자랭 같은 고위 관료들 주변에는 행정가, 사업가, 문인, 과학자,
재정가 집단이 모여들었다. 권력자는 부하들을 지켜주고 부하들은
충성을 바쳤다. 국가 기구 대부분이 이런 사당(私黨) 네트워크로 채워졌다.
표면적으로는 국왕이 전권을 장악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엘리트들이
국왕에 복종하는 척하며 이익을 취하고 고위직을 독점하고 있었다.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전횡을 일삼지 않고 충성을 다하는
부하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인물이 콜베르였다.
과연 콜베르는 죽을 때까지 루이 14세를 위해 밤낮 안 가리고 열심히
일하여 성실한 공무원의 전형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콜베르는 지난 시대 인물들과는 달리 깨끗한 방식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돈놀이를 했고, 똑같이 엄청난 사익을 챙겼다.
단지 라이벌의 인맥 대신 자기 인맥을 심었을 뿐이다.
사적 파벌을 이용하지 않고는 프랑스의 재정과 행정이 도저히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니, 차라리 부패한 방식이나마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면서 자신도 이익을 누리자는 것이 콜베르의 생각이었다.
왕비가 죽고 난 후 노년의 루이 14세는 비밀 결혼을 한 맹트농 부인의 치마폭에서 놀아났다.
이 부인은 천민 출신에서 그야말로 극적인 신분 상승을 하여 국왕의 애인이 되었다가 끝내 왕비가 된 나름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심신이 쇠약해진 국왕에게 종교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여 당대 가장 강력한 비선 실세로 성장했다.
맹트농 부인 파벌은 루이 14세의 세자나 손자 파벌보다도 더 강력했다.
무릇 줄 대서 출세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의리를 기대할 수는 없는 법, 세자가 병사하자 바로 그날로 파벌 사람들이
모두 도망가서 심지어 세자의 관을 지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국왕과 왕실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모 관계에 있었다고 해야 옳다.
강력한 부패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부패를 청산하는 일은 의당 상층에서 시작해야 한다.
프랑스 구체제는 그렇게 하는 데에 실패했다.
결국 혁명이 일어났고 뒤이어 나폴레옹 군사 독재로 귀결되었다.
다시 묻지만 역사는 반복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배우면 유사한 비극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시민은 17~18세기 프랑스 신민(臣民)들과는 다르다.
부정한 권력을 용인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파괴적인 폭력을 분출하지도 않는 성숙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는 정치권이 시민들을 이끄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정치권을 이끄는 시대로 진입하는 것 같다.
지금 부패를 끊고 개혁을 이루어낼 골든타임을 놓치면 또다시 수십 년, 수백 년 전 세상으로 미끄러져 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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