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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방송에만 보이는 인문학

바람아님 2017. 1. 9. 23:44
[J플러스] 입력 2017.01.09 06:35

오늘 우리가 겪는 개인적 어려움이나 국가적 난제, 나아가 전지구 차원에서의 문제들은 일시적인 기술적 준비 부족이나 시행 착오로부터만 발생하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세상이 변하고 발전하기는 하나, 기술 자체에만 눈길을 주고, 사람과 더 큰 세상에 두어야할 초점을 잃으면, 반드시 시간이 흐르면서 그 부작용을 마주하게 된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거시적이고 폭넓은 사고를 하여 다함께 잘 살 길을 찾는 일은 인문학에 기초한 바탕과 관점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단기적이고도 표면적인 유익함을 구하고자 만든 제도와 기술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역작용과 부작용을 만난다. 오염된 환경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고, 다음 세대로 그 숙제를 넘겨주어야 하는 상황은 한 예이다. 환경 오염을 방지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공학적인 일같지만 실은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 환경과 사람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인문학적 사고로부터 출발한다.
  
인문학은 애당초부터 모든 교육에 내재해 있으며,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든지 그 바탕에 인문학의 거름이 제대로 뿌려져야 좋은 결실을 맺는다. 자기 분야에서의 탁월한 성과와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잘못된 생각의 늪에 빠져 타인들을 힘들게 하고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는 이유는 그런 바탕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여 생각하고,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개인의 욕구 충족을 넘어 공동체 속에서도 찾아낼 줄 알아야 세상에 기여하면서 자신도 기쁜 삶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 보이기는 해도 우리 사회가 그 중요성과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인문학을 정보나 지식으로 인식하는 것은 가장 경계할 일이다. 인문학은 많은 정보와 지식을 주기도 하나, 실은 사고력을 우리에게 주기에 더 중요하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의 방대한 기록과 정보를 단순 저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인간은 그로부터 지혜를 얻어 유연한 사고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살핀다. 그래서 ‘요약된 고전’을 고전으로 알아서는 안된다. 위대한 고전은 온전히 읽고도 부족하여, 다시 읽고 또 되새기며 삶을 비추어 보게 되는데, 여러 고전을 취합한 요약본들을 읽으면서 그로부터 깊은 배움이 있을 것을 기대하는 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걸려도 요약과 요점이 아닌, 완성본을 읽어야 한다. 당신은 축소된 조각품과 그림을 보며 작가의 의도와 고민을 알 수 있는가? 줄거리나 요점만으로는 고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사고력이 커지기도 어렵다. 요점 정리된 고전을 수백권 맛보는 것보다, 한권이라도 완성본을 정독하며 타인과 토론할 때 지혜의 싹이 자라고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 정신이 움튼다.  

인문학을 사회 전반적으로 경시하는 분위기는 매우 우려스럽다. 말들은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대학에서는 인문학 계열의 전공 학과들이 없어진다. 모든 학문이 중요하기에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저마다의 영역에서 힘을 합쳐 세상에 기여함에도, 손에 들린 기술 자격증이 없고, 졸업 직후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학과가 사라진다. 분명 변해가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전처럼 할 수 없어진지 오래이나, 가족들이 즐겨 먹지 않는다고, 야채를 밥상에서 치우는 엄마를 보는 듯 하다. 다른 영역끼리의 ‘통합’이 대세이라고 하나, 통합이라는 것도 각 영역의 독자적 존립과 발전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닌가. 남이 먹어보고 전해주는 맛의 이야기를 듣게 하지말고, 우리 자녀들이 직접 먹어보게 해야 한다. 아무리 입시 준비에 바빠도, 읽어야 할 책들은 읽도록 장려해야 한다. 역사를 모르는 공학박사, 철학이 없는 경영자, 사람을 오직 생물로만 보는 의사를 키워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