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선출된 브누아 아몽의 대표 공약은 기본소득 도입(주 1)이다. 주요 대선 후보 중에서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건 이는 그가 유일하다. 아몽 후보의 기본소득엔 ‘생존 보편 소득’(revenu universel d’existenc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실업난과 고용 불안정으로 한계에 내몰린 국민 기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라는 취지가 담겨있다.
프랑스 대선에서도 기본소득이 주요 관심사로 부상했다.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해진다. 기본소득이 불평등을 완화하고 빈곤을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기본소득 도입에 큰 걸림돌은 크게 두 가지이다. 기본소득이 노동의욕을 떨어트려 경쟁력을 해치고, , 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최근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두 학자가 이에 대한 견해를 내놨다. 사회학자인 에릭 올린 라이트 위스콘신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유네스코와 국제사회과학위원회가 발행한 ‘2016년 세계사회과학리포트’에 기고한 글에서 기본소득은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보다 노동 의욕에 더 긍정적 영향을 주며 재정부담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오아나 마리네스쿠 시카고대학 해리스 공공정책 대학원 경제학 교수도 지난 6일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 기고문에서 기본소득은 노동의욕을 저하시키지 않는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두 사람은 모두 기본소득을 조건 없이 모든 사람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라이트 교수 기고문의 한국어 번역본은 유네스코 뉴스 최근호에 실렸다. 라이트는 여기서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한 재정 부담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기본소득은 이미 충분한 수준의 생활을 가능케 해 주기 때문에 이것이 시행되면 교육이나 의료 같은 공공 서비스 외에 기존의 기초생활수급자 제도나 노인연금 같은 재분배 기능을 가진 대부분의 제도들은 폐지된다”라며 “이는 곧 이미 정부가 파편적으로 시행 중인 사회보장제도에 투입하고 있는 지출에 비해 기본소득 시행 시 예상되는 지출 증가폭이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기본소득 도입으로 임금과 고용의 유연성이 커지면 자영업자와 기업의 경영에도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라이트는 “최소 생활보장이 기본소득으로 인해 이미 달성되는 만큼 최저임금 역시 훨씬 유연하게 적용된다”라며 “일정 수준 이상의 대부분 소득자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지급받는 기본소득보다 더 많은 세금을 냄으로써 여전히 국가 경제에 기여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본소득으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경우 변화할 사람들의 관계에 주목했다. 그는 “가난이 없어지고 노동 계약이 (생계를 위한 강제가 아닌) 자의에 의해 이루어짐에 따라 노동자와 고용주 간의 근본적인 불평등이 사라진다”라며 “시장 바깥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나 물품을 제공하기 위한 시민들 간의 협력과 연대도 활발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라이트는 현재 사회 보장 정책은 일을 해 소득을 올릴 경우 국가 지원금이 줄어들어 “결국 개인이 올린 추가 소득분이 상쇄되어버리는 ‘빈곤의 덫’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며 “기본소득이 시행될 경우 개인은 추가 소득을 올리는 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일하는 만큼 더 많은 가처분 소득을 얻게 되기 때문에 노동 의욕이 꺾이지 않는다. 그는 “2011년 인도에서는 8개 마을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실험을 한 바 있다. 이 모든 실험에서 기본소득은 수령자들의 삶의 질을 괄목할 만하게 높이면서도 노동 의욕에는 아주 제한적인 영향만을 미쳤다는 결과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마리네스쿠는 “1970년대 미국에서는 ‘보편적 생존 소득’이 ‘음의 소득세’(주 2)라는 이름으로 유행했다”라며 “실제 경제학자들은 보편적 생존 소득이 기존의 사회부조보다 노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더 적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으로 돈을 벌어들일 때 사회 부조금도 그만큼 줄어드는 기존 대다수 사회보장 정책은 일을 할 유인을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음의 소득세의 경우 노동으로 소득을 추가할 때 사회 부조금도 줄지만 여전히 소득 추가분보다 줄어드는 사회 부조금의 액수가 적다. 1원을 벌 때 보조금은 0.5원 줄어드는 식이다. 예를 들어 한 달에 100만원의 보조금을 받는 실업자가 취업을 해 100만원의 소득을 벌게 될 경우에도 보조금은 50만원만 줄어 소득은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늘어난다. 추가 소득을 얻을 기회가 있는 한 노동 의욕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 소득에 따라 보조금이 줄어드는 비율이 낮을수록 노동 의욕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는 1970년대 미국과 캐나다 일부 도시에서 음의 소득세를 실험한 결과 일부 노동 시간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지만 노동 의욕이 감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프랑스의 경우에도 월 750유로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하루 노동 시간이 1시간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기본소득은 개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주어진 돈이다. 마리네스쿠는 이를 ‘로또’와 비교했다. 그는 “하늘에서 뜻밖의 돈이 떨어진다고 일을 그만”두지는 않는다며 2015년 스웨덴 복권 당첨 사례를 연구한 논문의 결과를 예로 들었다. ‘부의 효과가 노동 공급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이 논문에 따르면 복권에 당첨돼 10만유로(약 1억2230만원)를 벌었을 때 수년 내로 일을 그만둔 사람은 100명 중 2명에 불과했다. 복권 당첨 효과는 10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0이 됐다. 연간 10만유로 이상인 가장 부유한 계층이 다른 계층에 비해 일을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조건 없이 돈을 준다고 노동 의욕이 줄지는 않으며 빈곤층일수록 그 경향은 더욱 강하다는 것이다.
마리네스쿠는 1982년부터 기본소득을 도입한 알래스카의 사례도 들었다. 알래스카는 석유 판매로 벌어들인 돈으로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올해의 경우 1인당 1022달러, 지난해의 경우 2072달러였다)을 준다. 마리네스쿠는 자신과 동료 경제학자들이 알래스카 사례를 연구한 결과 기본소득을 받는 경우 받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노동참가에 차이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재원조달 문제가 있지만 노동의욕이 줄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최소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아몽 후보의 기본소득제를 지지하며 그의 자문위원회에 합류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와 견해를 같이 한다며 기본소득 도입 주장을 무책임하다고 비난하기 전에 이를 먼저 연구해보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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