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옆집 소 죽여 달라'는 경제민주화

바람아님 2017. 2. 24. 23:29
문화일보 2017.02.24 14:20

박학용 논설위원


러시아 민화 중 한 토막. 한 가난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늘 옆집 부자 농부를 부러워했다. 어느 날 부자 농부가 소 한 마리를 샀다. 소를 살 돈이 없던 그는 매일 신에게 소원을 빌었다. 딱하게 여긴 신이 물었다. “네 소원이 뭐냐?” 그는 말했다. “옆집 소를 죽여주세요.” 돈이나 권력을 쥐고 싶지만 제 뜻대로 잘 안 될 때 남 탓하며 ‘너 죽고 나 죽자’식으로 가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꼬집은 이야기다. ‘경제민주화’가 딱 그런 꼴이다.


선거철만 되면 대한민국에 경제민주화 광풍이 휘몰아친다. 재벌은 호되게 치도곤당하고 국민은 신나게 분풀이한다. 선동자는 정치인이다. 표 읽는 귀신이 표 냄새를 못 맡을 리 없다. 대선 주자들은 ‘당선 보증수표’라도 되는 양 경제민주화를 외쳐댄다. 그러다가 그 폐해는 결국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돌아간다. 이번 조기 대선 정국에서도 악습은 도돌이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얹혀 바람은 더 세졌다. 그 결정판이 야당이 밀어붙이려는 상법 개정안이다.


상법 개정안만 들여다봐도 재계의 비명(悲鳴)이 절로 실감 난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23건 중 경영권에 영향을 줄 법안만 11건이다. 다른 규제 법안까지 더하면 그런 유가 100건도 넘는다. 사외이사를 겸하는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1주에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더 강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은 경제법 아닌 정치법이다. 표심에 손 벌리려 재벌 손보려다 한국을 국제 기업사냥꾼의 ‘평생 밥’으로 만들 판이다. 오죽하면 중소·중견기업, 국가 원로, 정부까지 나서서 “이러다간 나라 망한다”고 탄식할까.


정치인이 경제민주화를 프로파간다로 악용하는 건 그 개념이 극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헌법에 이름이 오른 지 올해로 꼭 30년이 됐지만 아직도 그 정의는 백인백색이다. 사흘 전 작고한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 교수는 ‘효율(경제)과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 정리를 발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화재신고 전화 119를 빗대 관련 조항인 ‘헌법 119’에 불이 났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헌법이 말하는 경제민주화의 본칙은 군더더기를 빼면 ‘경제영역에서의 공정성과 형평성 달성’이다. 단, 그 전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목표도 ‘국민 모두 잘사는 사회’다. 이 단어가 ‘반(反)시장’ ‘반기업’ ‘반성장’ ‘반자유’와 혼용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광장의 분노’에 편승해 기업을 패대기치는 건 가짜 경제민주화다. 급박하고 과격하게 지배구조를 고치려는 한풀이식 재벌개혁도, 기업을 더 크게 키우려는 기업가정신을 꺾는 몰상식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경제민주화를 배척만 하려 해선 안 된다. 양극화, 성장 사다리 붕괴, 계층 이동성 감소 등 우리 사회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을 보검(寶劍)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 공정 기회가 주어질 때 경제 잠재력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시대 과제다. 정치권·정부와 기업의 지혜로운 접근이 절실한 이유다.


정치권에 주문한다. 잠룡은 다들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고 야단이다. 전 세계가 저성장에 맞서 일자리 전쟁 중이니 솔깃한 구호다. 그런데 다른 편에선 ‘일자리 본산’ 대기업과 전쟁 중이다. 이제라도 경제 자해 행위를 접으라. 굳이 경제민주화 관련 규제 하나를 만들려면 불필요한 기업규제 두 개를 풀라. 단박에 일자리 수만 개를 창출할 서비스법과 노동개혁법 처리는 필수다.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해볼 요량이면 성장 해법도 같이 내놓으라. 대기업도 법·제도 이전에 인식·문화를 스스로 바꿔야 한다. 국내 투자 많이 하고, 고용 많이 하는 기업이 애국자임도 명심하라.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면서 기술 혁신에도 힘쓰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전 뉴욕 지국장 매슈 비숍은 저서 ‘박애 자본주의’에서 양극화·탐욕으로 위기에 몰린 자본주의를 살릴 방법으로 가진 자의 양보와 기부를 꼽았다. 귀담아들을 대목이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주의는 부자를 끌어내리고, 자본주의는 가난한 자를 끌어올린다”. 틈만 나면 경제민주화의 신봉자임을 자처하며 기업인을 범죄자 쯤으로 취급하는 우리 정치인들은 어디에 발을 딛고 서 있는가. 자본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