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10.26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나는 퍽 오래전부터 10월 27일 오늘을 나만의 특별한 날로 지키고 있다. 그렇다고 내 생일이거나 결혼기념일도 아니다. 세계사의 관점에서도 그리 대단한 날이 아니다. 1904년 미국 뉴욕 시의 지하철이 처음 개통된 날이며 1971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이 국명을 자이르로 바꾼 날일 정도일 뿐, 세상이 놀랄 만한 사건이 일어난 날도 아니다. 오늘 태어난 유명인을 찾아봐도 영국의 탐험가 쿡 선장(1728),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연주자 파가니니(1782), 팝 아티스트 리히텐슈타인(1923) 등이 내가 아는 사람의 거의 전부이다.
내가 10월 27일을 기억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4년마다 한번씩 윤년이면 10월 26일로 대체해야 하지만, 오늘은 그레고리력으로 새해가 시작된 지 꼭 300번째 되는 날이다. 300이란 숫자 역시 그리 특별한 의미를 지닌 숫자도 아니다. 수학적으로 300은 어느 일정한 물체로 삼각형 모양을 만들 때 필요한 물체의 총수를 나타내는 파스칼 삼각수의 하나이며, 그 수가 각 자릿수의 합으로 나뉘는 '하샤드 수(Harshad number)'라는 점이 흥미롭긴 하다. 그런가 하면 13에서 47에 이르는 소수(素數) 열 개를 모두 합하면 300이 되기도 한다.
내가 10월 27일 오늘을 나름대로 특별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이제 금년도 겨우 65일, 즉 두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나 자신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정작 크리스마스가 오면 그때부터 그믐날까지 사실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걸 고려하면 이제 금년도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여러 해 전 우연하게 10월 27일이 바로 새로운 해가 시작된 지 300일째 되는 날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다음부터 나는 이날을 기하여 늘 그해를 마무리하는 작업에 조용히 착수하곤 한다. 100일째인 4월 10일이나 200일째인 7월 19일보다는 오늘이 내겐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시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본이며 아무도 잃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남긴 말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에 따르면 시간의 걸음걸이는 사람마다 다르단다. 남은 두 달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당신의 2009년의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철새들도 서서히 길채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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