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3.27 정우상 정치부 차장)
2009년 여름 영국 남부의 해안 도시 본머스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 하원 의원은 10대 폭력배들이 길거리에서 축구하며 시민에게 행패를 부리자 이를 휴대전화 사진으로
찍었다. 경찰 신고용이었다. 그러자 폭력배 4명이 달려들어 집단 폭행을 가해 그는 병원 신세를 졌다.
구타당하는 모습을 본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을 당할 뻔했다.
국회의원 꼴이 영 말이 아니다.
이 '괴짜' 국회의원은 불과 1년 전에도 이런 일을 당했다.
깡패들이 남의 집 정원에다 소변을 보자 "그만두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폭력배들은 욕을 하며 돌을 던졌다.
시민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덕분에 구타는 피했지만 무모한 짓이었음은 틀림없다.
그는 경찰에서 "보통 사람들이 나서 '반(反)사회적 행동'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폭탄 테러로 동생을 잃었다.
지난 22일 영국 런던 테러 때 칼에 찔린 경찰관을 위해 인공호흡과 지혈을 하며 유명해진 영국 외무 차관이자
보수당 소속 하원 의원 토비아스 엘우드(51) 이야기다.
경찰의 제지를 뚫고 현장에 달려간 '영국 신사'가 온몸에 피를 묻혀가며 응급처치하는 장면을 보고 우리는
"정치인의 품격(品格)이 다르다"며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가 몇 년 사이 했던 행동을 보면 '영웅'은 우연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범죄나 테러처럼 공동체 질서를 위협하는 곳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고 참견하고 잔소리하는
조금 '이상한' 정치인이었다.
22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발생한 테러 현장에서 토비아스 엘우드 외무차관(가운데)이
얼굴에 피를 묻힌 채 테러범의 칼에 찔려 쓰러진 경찰관에게 달려가 인공호흡과 심장마사지를 하고 있다.
엘우드 차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경찰관은 끝내 숨졌다. /AP 연합뉴스
엘우드를 보며 '보수 정치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한국 보수 정치인들의 이력은 대략 이렇다. 명문대를 졸업해 검찰이나 판사·변호사를 한 뒤 유명해진다.
군대는 안 가거나, 가더라도 군의관·법무관 같은 데로 간다. 아니면 부잣집에서 태어나 승승장구하거나.
우리 정치인들은 조폭이 시민들에게 행패를 부린다면 그냥 지나치거나 아니면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어, 왜 이리 동네가 시끄러운가. 빨리 조치 좀 하세요" 하며 거드름을 피운다.
불법행위를 하는 지역구민에게 싫은 소리라도 한다면 "정치인의 갑질"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엘우드는 우리의 보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대학에서 학생회장을 지냈고, 졸업 후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쿠웨이트·보스니아 등에서 군복무하며 대위로 제대했다.
이후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를 따내 영국 증권거래소에서 2년을 근무하고 로펌에서도 일했다.
2005년 국회의원이 됐다. 학생회장, 5년 군 생활, 회사원, 그리고 국회의원. 국회의원이지만 공동체의 질서와 가치를 위해
직접 행동하는 시민의 한 명으로 살아간다.
폐허가 된 한국의 보수 정치는 아마도 엘우드 같은 '품격 있는 꼰대'가 우후죽순처럼 나와야 재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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