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朝鮮칼럼 The Column] 양극화 위기 더는 방치할 수 없다

바람아님 2017. 3. 29. 19:14

(조선일보 2017.03.29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태일 焚身 반세기 지나도 청년·노년 할 것 없이 

여전히 취업난과 가혹한 노동에 한숨… 

촛불 집회 참가한 많은 이들, 탄핵만 외친 것 아니야 

그들이 토로한 아픔 치유해야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근혜 정부의 직접적 붕괴 원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있다. 

그러나 그 발단은 세월호·메르스 등 재난에 대한 부실한 대응 등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한 데서 시작했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국가의 기본적인 임무는 국민의 생명을 온전히 

지키고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예외적인 재난이나 사고의 발생과 상관없이 우리 국민 상당수는 일상에서조차 기본적인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특징짓는 일상화된 실업, 비정규직과 정리해고의 보편화, 

실효성 있는 복지제도의 미비, 청년 빈곤, 노인 빈곤 등으로 인해 사회적 취약 계층의 삶이 절망적인 궁지에 처하게 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소년들 역시 견디기 어려운 노동 환경 속에서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무자비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한 통신업체의 고객센터에서 현장 실습을 하던 중 전화 건수를 채우지 못하는 

사정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지난 1월 저수지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홍 모양의 뉴스는 충격적이다. 

최근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문화제가 전주에서 열렸는데, 같은 고객센터에서 일하다가 2014년 홍양보다 먼저 목숨을 끊은 

이 모씨의 아버지도 참석했다. 홍양의 아버지는 "딸을 지켜주지 못한 못난 아버지로서 부탁드린다. 우리 딸처럼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더 이상 없는 세상을 만들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씨의 아버지도 "제발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호소는 그리 낯설지 않다. 

1970년 청계천 평화시장의 노동자였던 전태일이 가혹한 노동 조건에 항의해 분신(焚身)하면서 던진 마지막 절규도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였다. 비록 노동 환경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로부터 5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전태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 탄생 설화이기도 한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개인이 자연 상태에서 누리던 자연권을 국가에 양도하면서 확보하고자 

한 것은 다름 아닌 '평온하고 일상적 삶'이었다. 특히 영국의 정치철학자 홉스는 17세기 전반 영국의 내전 상황을 염두에 

두고 사람들 사이에 공통된 정치권력이 없는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비유했다. 

이런 상태에서 개인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사회 계약을 체결하면서 자연권을 포기하고 국가를 탄생시킨다. 

따라서 국가권력의 임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종식시키고, 시민들에게 최소한도의 일상적 삶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생산 현장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치닫고 있는 민중의 삶을 팔짱 낀 채 방관하거나 

아니면 정경 유착에 기댄 '부작위'(무대책)를 통해 그러한 삶을 방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에서의 평온한 일상적 삶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는 현재 '부재중'이다. 그러한 현실에서 취업난에 직면한 

젊은 청소년들이 가혹한 노동 조건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작년 10월 말부터 주말마다 많은 시민이 참가한 촛불 집회에서 쏟아져 나온 구호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적인 

요구에만 그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시대와 세태에 대한 울분과 불만을 분출하고 토로하기 위해 

광장에 나왔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작년 11월 진주 촛불집회에 나온 한 19세의 청년은 일상적 삶, 곧 가정과 학교와 

노동 현장을 지배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자신이 염원하는 세상을 감동적인 문구로 

표현한 바 있다. 

"사람을 돈이나 자신의 소유물로 보지 않고, 사람을 돈과 이익으로 환산하지 않고, 

독립적인 존재로 보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경쟁 속에서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 

사람답게 살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절대다수가 그 해결을 염원하는 엄중한 위기다. 

순수하고 여린 마음으로 무자비한 감정노동을 견디지 못해 자신을 살처분하는 청년들의 삶에 숙연한 표정으로 

잠시 추모의 뜻을 표하다가 뒤돌아서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 몰라라' 하는 기업과 정부의 태도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단기적으로 감정노동자보호법을 확대 적용하고 여러 가지 미비한 규정을 보완·정비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사회 양극화를 심화하는 경제 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데 새롭게 출범할 정부와 국회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