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시왕도(十王圖)’ 중 하나다. 시왕은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왕 열 명을 가리킨다. 염라대왕은 그중 다섯 번째다. 사람들의 행적을 두루마리 종이에 일일이 기록한다. 한 개인의 대차대조표라고나 할까. 세상만사를 담는 거울처럼 죄를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다. 분식회계는 불가능하다. ‘시왕도’는 열 폭으로 이뤄졌다. 이를테면 지옥 연작이다. 그림 모두 섬뜩하다.
예컨대 가장 먼저 등장하는 ‘진광대왕의 철정지옥’. 뜨겁게 달군 철판에 죄인을 눕히고 온몸에 쇠못을 박고 있다. 손·발·머리 등 어디 한 곳 빠짐없이 무려 500번의 고통을 준다고 한다. 세 번째 ‘송제대왕의 발설지옥’도 공포스럽다. 남을 비방, 혹은 욕한 사람을 기둥에 묶어 놓고 혀를 뽑아 버린다. 이게 끝이 아니다. 늘어진 혀 위에서 소를 몰며 쟁기질을 한다. 역시 입단속이 중요하다.
이들 ‘시왕도’는 서울 강남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인 1764년에 제작된 것이다. 평범한 주인공 김자홍을 내세워 저승세계를 둘러본 주호민 작가의 인기 웹툰 ‘신과 함께’ 이미지를 곁들이며 관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불화가 보다 가깝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도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열 명의 심판관을 통과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반성과 각오가 겹친다.
‘시왕도’는 죽은 이들을 기리는 절집의 명부전(冥府殿)에 걸었다. 그렇다고 두려움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명부전의 주인장은 지장보살(地藏菩薩). 무서운 시왕과 달리 인자한 보살이다.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러 부처가 되기를 거부하고 몸소 지옥에 내려왔다. 사람들에게 선업(善業)을 쌓으라고 권한다. 다만 기억할 것 하나, 명부전은 임진왜란·병자호란 양란 이후 활발하게 세워졌다. ‘시왕도’ 또한 18세기에 성행했다. 작품마다 내용·구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고단한 현실에 대한 반작용 비슷하다. 세월호 인양과 대통령 심판, 두 고난에 직면한 지금 ‘시왕도’가 더욱 아리기만 하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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