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강원도 정선 동강 일대는 동강할미꽃이 만개하다. 동강 비경을 감싸고 있는 석회암 절벽에는 자주, 분홍, 흰색의 동강할미꽃들이 앞다퉈 고개를 내민다. 미나리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흰 털로 덮인 열매 덩어리가 할머니 흰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꽃이 땅을 보지 않고, 하늘을 보고 피는 점이 일반 할미꽃과 다르다. 이 지역에서만 서식해 보호가치가 높은 야생화다.
개화기인 요즘 이 꽃이 탐화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고성능 카메라로 무장한 출사객이 깨끗한 작품을 찍기 위해 묵은 잎과 줄기를 떼는 것은 예사다. 물방울이 맺힌 모습을 연출하려 생수나 워셔액을 뿌리거나 벌을 부르려고 꿀을 바르기까지 한다. 햇살이 있는데도 물방울을 잔뜩 머금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이 아니라 글리세린이 발라져 있다는 것이다. 모두 꽃의 생식과정인 수분(꽃가루받이)을 방해할 수 있다. 훼손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뿌리째 뽑아가는 이들도 있다. 어처구니없는 야생화 수난 현장이다. 보다 못한 ‘동강할미꽃보전회’ 주민들이 감시에 나서고 있지만 열 사람이 도둑 하나를 잡기 힘든 법이다.
야생화 수난은 봄철 이름 있는 산에선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안양 수리산에선 올봄엔 ‘변산아씨’가 별칭인 변산바람꽃을 보기 쉽지 않다. 지난해까지는 들머리나 계곡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동호인들이 헤집고 다니는 비람에 사람의 추격을 피해 정상이나 높은 바위 뒤로 자취를 감춰버렸다고 한다.
얼마 전 사진작가에게 들은 얘기는 충격적이다. ‘얼음새꽃’ 또는 ‘눈새기꽃’으로 불리는 복수초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눈가루와 얼음가루를 가져가 뿌리기도 한다. 언 땅이나 눈밭에서 황금잔 모양의 꽃을 피우는 경이로움을 연출하기 위해서다. 노루귀 등 야생화 주변 낙엽을 걷어내기는 다반사다. 낙엽은 기온이 내려갈 때 이불과 같은 보온 역할을 한다. 걷어버리면 생육에 지장을 초래하는데도 애써 모른 척한다. 소생의 계절, 4월이 야생화들에겐 말 그대로 ‘잔인한 달’이 되고 있다. 산에서조차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이들은 봄꽃을 즐길 자격이 없다.
박태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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