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안 뒀던 창문 가림막 찍으니 가림막 뒤 풍경 상상케 하는 효과
남과 다르게 대상을 바라볼 때 평범함 벗고 새 의미로 다가와
남들이 좋은 건 이미 다 찍어서 더 이상 새로운 소재는 없다고 한다. 또 사진을 배울 땐 '무엇을 찍을까'보다 '어떻게 찍을지'부터 고민하라고도 한다. 하지만 사진은 촬영 대상이 정해지면 어떻게 찍을지 방법이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렌즈나 광선보다 촬영할 대상부터 먼저 찾아야 한다. 무엇을 찍는가로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게 사진이다.
서울 청담동 갤러리 스페이스 옵트에서 전시 중인 '이순신 장군들'전(展)은 백원짜리 동전을 사진으로 찍었다. 전시 사진가인 정지필은 이순신 장군 얼굴이 보이는 오래된 동전 앞면을 대형카메라로 찍어 백원짜리 동전 한 개를 버스 타이어만 한 크기 사진으로 뽑았다. 동전 속 얼굴들은 세월의 흔적을 타서 누렇고 까만 때가 끼고 상처가 서로 다른 모습들로 변해 있었다.
작은 동전을 큰 사진으로 빼놓고 보니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동전 속 이순신 장군들은 서로 다른 세월을 거치며 각자 다르게 변해 있었다. 누군가 뾰족한 금속으로 동전을 쪼아서 얼굴이 흉하게 변했거나 오래되어 코와 입, 수염이 형체가 거의 사라진 것도 있다. 어느 주머니 속에서 짤랑거리는 잔돈이거나 거스름돈으로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때가 타고 상처가 생긴 모습으로 사진가의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나 인생처럼 시간이 흐르면 저렇게 모두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게 됐을까? 사진가는 몇 년 전 의뢰를 받아 외국산 고급 은제품을 촬영하면서 처음 금속으로 된 물건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방안 책상에 있던 동전을 보다가 은행에 가서 우리나라 동전과 외국 주화들을 사 와 사진으로 찍었다. 그런데 깨끗한 새 동전보다 상처 많은 오래된 외국 동전들에 더 정이 갔다. 여러 사람 손을 거친 동전의 상처들이 자연스러운 조각처럼 보였다. 몇 년 후 오래된 동전들을 모아서 다시 찍었다. 정지필은 과거 스튜디오에서 잡아 죽인 모기나 아이들이 먹는 울긋불긋한 젤리빈을 터뜨려 사진으로 찍었던 작가다. 그는 사진의 소재를 모두 자신의 생활이나 주변에서 찾는다고 했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전시 중인 최수정은 절의 불단(佛壇)이나 꽃살문에 새겨진 꽃문양을 찍었다. 불교에서 상상의 산인 수미산(須彌山)에 비유해서 수미단이라고도 부르는 불단은 불상을 모시는 자리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신비한 문양이 가득하다. 사진가는 전국 50여개 불교 사찰을 찾아다니며 꽃문양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 이미지를 밀착필름으로 옮긴 후 이것을 다시 검프린트(Gum bichromate print) 방식으로 수채화 종이에 프린트했다. 검프린트 방식은 사진 발명 초기에 유행했던 방식으로, 검프린트로 처리한 사진을 보면 오래된 유화 그림 같은 깊은 맛이 느껴진다. 사진 속 모란, 연꽃, 작약, 국화 등의 문양은 극락정토를 꿈꾸며 살아온 불심 가득한 신자들과 오랜 세월을 견뎌온 것 같다.
대웅전에 들어서는 대개의 신자는 금빛으로 화려하고 거대한 불상에 압도돼 그 아래에 있는 불단 문양을 보지 못한다. 최수정은 불교 신자인 어머니를 따라간 절의 불단에 새겨진 꽃문양 단청을 보면서 자신의 검프린트 방식과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대상을 소재로 독특한 사진 작업을 하는 사진가는 그 외에도 많다. 이주형은 창문에 내려진 블라인드와 블라인드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촬영한다. 창문 안 블라인드의 색과 가려진 창밖의 모습이 무엇일까 시선을 끈다.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창문의 평범한 가림막도 누군가에겐 훌륭한 예술 사진의 소재가 된 것이다. 양승욱은 아이들이 갖고 노는 싸구려 플라스틱 장난감을 방안이나 응접실, 거실 등에 모아놓고 찍는다. 그의 사진들은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에 나오는 살아 있는 장난감들처럼 사람이 잠든 밤에 살아나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모습 같다.
동물의 한 가지 포즈만 일관되게 찍는 사진가도 있다. 칼리 데이비슨(Carly Davidson)은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 몸통을 좌우로 흔들며 물을 터는 모습을 초고속 셔터로 촬영한다. 몸을 흔들 때 털이 사방에 날리고 표정이 일그러지는 개나 고양이 모습에 사람들은 의외로 열광한다. 반면 도로에 갑자기 뛰어들었다가 로드킬(Road Kill)을 당한 야생동물만 찍는 사진가도 있다. 에마 키시엘(Emma Kisiel)은 미국 전역을 돌며 로드킬을 당한 동물 주변에 돌멩이와 꽃을 둥글게 놓고 사진으로 기록한다. 죽은 동물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해 줄 수 있는 것이 꽃과 돌멩이라고 했다.
자신만의 피사체를 찾는 것은 어쩌다 운이 좋아 로또를 맞추는 것과 다르다. 남과 다르게 보고 상상하며 때론 사진을 찍어가는 중에 발견하고 발전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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