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20만 몰린 벚꽃축제.. 돗자리 깔고 술판·고성방가]
- 2008년부터 봄축제
아이들, 묘비 밟으며 술래잡기.. 연인들은 '셀카'에 스킨십까지
"호국영령 기리고 추모하는 곳" 안내방송 나와도 웃고 떠들어
일요일인 지난 9일 오후 1시쯤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장병묘(墓) 일대.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나무들 사이에서 커플 옷을 맞춰 입은 연인 두 쌍이 일명 '점프샷'을 찍고 있었다. 공중으로 팔짝 뛰어오른 순간을 포착해 사진 찍는 것이다. 점프를 마친 커플이 "사진 잘 나왔냐"고 묻자 사진을 찍어준 다른 커플은 "표정이 웃기게 나왔다"고 놀렸다. 잠시 후 차례를 바꿔 카메라 앞에 선 다른 커플은 서로에게 발 차기 하는 모습을 찍으며 깔깔 웃었다. 순국선열 17만여명이 모셔진 묘역을 사진 배경으로 삼은 것이다.
현충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병 묘역 중턱에는 소형 텐트가 설치돼 있었다. 벚꽃놀이를 즐기러 나온 가족들이 설치한 것이다. 텐트 옆에서 아이들이 묘비를 밟으며 뛰어다녔다. 술래잡기를 하다 묘비 옆에 놓인 꽃병을 발로 차서 넘어뜨리기도 했다. 이곳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서 제사를 지내던 6·25 참전용사 유족 이모(65)씨는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께 인사드리려고 왔는데 축제 분위기라서 깜짝 놀랐다"며 "아무리 놀러 왔더라도 웃고 떠드는 것은 좀 심하지 않으냐"고 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을 모신 서울현충원이 '진상 벚꽃놀이객'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벚꽃놀이를 와서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술을 마시거나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웃고 떠드는 행락객들 때문에 경건한 추모 분위기를 해친다는 지적이다.
현충원은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아래쪽으로 늘어진 수양벚나무로 유명해져 벚꽃철마다 방문객이 몰린다. 특히 젊은 층에게는 '셀카 이쁘게 나오는 곳'으로 소문이 나 있다. 현충원 측도 '모든 국민에게 열려 있고, 언제든 찾을 수 있는 호국공원이 되겠다'는 취지로 지난 2008년부터 '수양벚꽃과 함께하는 열린 현충원' 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 벚꽃 축제는 지난 6일 시작돼 12일까지 계속된다. 주말인 지난 8~9일에는 평소 관람객(2만여명)의 10배가량인 19만9000여명이 현충원을 찾았다.
그러나 일부 방문객은 국립묘지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추모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지난 9일 현충원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이곳은 국가·사회를 위해 희생하신 분을 기리고 추모하는 곳입니다.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해주십시오"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일부 시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돗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며 떠들었다. 현충원은 음주·흡연 등을 금지하고 누워 있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경비대원들이 돌아다니며 "여기에 누워 계시면 안 된다"고 했지만, 이들이 지나가면 곧바로 다시 드러눕는 일이 빈번했다.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애정 행각을 벌이는 연인들도 있었다. '벚꽃 명소'로 꼽히는 충무정 인근에서는 연인들이 '셀카'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한 커플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돗자리에 누워 스킨십을 하는 커플도 있었다.
현충원 측은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시민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경비대원 김모(61)씨는 "벚꽃철이면 온종일 고성방가하거나 누워 있는 사람들 쫓아다니는 게 일"이라며 "벌금 등 처벌 규정이 없다 보니 주의를 줘도 '네가 뭔데' '법으로 정해뒀냐'며 무시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윤상호 현충원 관리팀장은 "벚꽃 축제 기간에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계도가 어려운 점이 있다"고 했다. 송준범 6·25 참전유공자회 안보부장은 "현충원은 아픈 과거를 잊지 않도록 살아 있는 역사 교육을 제공하는 장이 돼야 한다"며 "일부 몰상식한 시민 때문에 현충원의 취지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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