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4.25 강경희 논설위원)
2014년 가을 서른일곱 살 젊은 프랑스 경제 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리셉션이 열렸다.
한국서 사업하는 프랑스 상공인을 초청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 갔던 한 참석자는 "40분간 메모 한 줄 없이 '주 35시간 일하는 프랑스는 더 이상 안 된다'며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30대 장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가 바로 엊그제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 득표를 한 에마뉘엘 마크롱이다.
▶투자 은행 합병 전문가 출신인 마크롱은 중도 좌파 올랑드 대통령 밑에서 친기업 성향의 '마크롱법(法)'을 통과시켰다.
노동시간 연장, 쉬운 해고 등을 밀어붙였다. 파리 외곽을 방문했다가 성난 시위대로부터 계란 투척을 당하기도 했다.
찬사도, 비난도 쏟아지는 그에게 프랑스 언론이 붙여준 별명이 '다이너마이트'다.
▶2002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가 치러진 다음 날, 중도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 당수 사진을 1면에 크게 실었다. 그 위에 '안 돼(Non)'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민자에게 배타적이고 '무(無)관용'을 내세우는 르펜 후보가 2위 득표로 대선 결선 투표에 나가게 되자 프랑스 언론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극우 돌풍에 놀란 프랑스 유권자들이 결선 투표에서 우파 시라크 후보에게 몰표를 줬다.
시라크가 재선에 성공했지만 프랑스에서 극우 목소리는 무시 못할 정치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 르펜의 딸이 이번에 2위 득표를 해 아버지에 이어 15년 만에 결선 투표에 올랐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유권자는 사분오열(四分五裂)됐다. 후보 11명 중 네 후보가 20% 안팎의 지지를 얻었다.
그 와중에 좌·우 주류 정당 후보 둘은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프랑스 제5공화국이 출범한 지 6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좌도, 우도 아니라며 '전진'이라는 이름의 정치 운동을 주도한 무소속 마크롱, 아버지의 극우 정당을 물려받아
주류 정치에 반기를 드는 이미지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마린 르펜이 결선 투표에서 맞붙는다.
▶2차대전 이후 프랑스 경제를 '영광의 30년, 대량실업의 30년'이라고 프랑스 언론이 표현했다.
무기력한 정치는 '영광의 30년'을 재현하는 데 실패했다.
좌파 거물 미테랑 대통령이 14년(1981~1995년), 우파 거물 시라크 대통령이 12년(1995~2007년) 집권한 이후
정치 구심점도 사라졌다. 우파 사르코지, 좌파 올랑드가 차례로 집권했지만 경제 살리기에 실패했다.
주류 정당의 실패는 결국 프랑스 정치판에 아웃사이더의 역습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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