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박해현의 문학산책] 문학 청년이 소설 출간 대신 소설 같은 삶을 빚어내다

바람아님 2017. 5. 12. 09:19
조선일보 2017.05.11. 03:07

중학생 때부터 文靑 마크롱에 24세 연상 교사 출신 아내는
"소년의 지성에 매료됐다" 고백
의회 답변 보들레르 詩로 하고 대선 승리 무대는 연출 기법 쓴
영웅탄생 퍼포먼스로 매력 발산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앞으로 갓!/ 아, 허파가 불타고, 관자놀이가 울부짖는다"

프랑스의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쓴 시 '나쁜 피' 일부다. '앞으로 갓'은 프랑스어로 '앙마르슈(En marche)'라고 한다. 최근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에마뉘엘 마크롱(40)이 창당한 중도파 정당 '앙마르슈'는 랭보의 시를 떠올리게 했다. 기성 체제에 반항한 랭보가 좌우 대립으로 고정된 정치판을 깬 마크롱에게 영감(靈感)을 준 듯하다는 추측이 일간지 르몽드 인터넷판에 실리기도 했다.


랭보는 소년 시절에 벌써 시인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마크롱은 중학생 때 조숙한 문학 소년이었다. 그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나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 같은 시집을 옆에 끼고 살았다. 현대 시인 중 르네 샤르를 특히 좋아했다. 그의 중학교 동창생은 "마크롱이 앙드레 지드의 에세이 '지상의 양식', 미셸 투르니에의 소설 '마왕', 줄리앙 그라크의 소설 '시르트의 바닷가'를 탐독했다"고 기억했다.


열여섯 살 마크롱은 문학을 가르친 여교사 브리지트 트로뉴를 만났다. 두 사람은 24년의 나이 차이를 무시한 채 사랑에 빠졌고, 13년의 연애 끝에 부부가 됐다. 트로뉴는 소년 마크롱의 재능을 일찍 알아봤다. 그녀는 대선 기간 중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 시절을 회상했다. "마크롱은 보통 애들과는 달랐다. 그는 늘 책에 파묻혀 살았다"는 것. 당시 스승과 제자는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두 사람은 공동으로 희곡을 쓰기도 했다. 트로뉴는 "나는 그 소년의 지성에 매료됐다"며 "늘 깊이를 잴 수 없는 그의 능력은 전적으로 비범했다"고 기억하기도 했다.


마크롱은 고등학생 때 소설 3편을 썼다고 한다. 그의 측근이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하나는 아스텍 문명을 다룬 서간체 소설이고, 또 하나는 고전적 연애소설이고, 나머지는 피아니스트를 주인공으로 삼은 음악 소설"이라는 것. 마크롱은 "문학이 내 담론과 행동에 양식을 제공했다"고 말해왔다. 그는 대학생 때 동아리 활동을 안 했다고 한다. 그런 외톨이 기질에 대해 그는 "가족이여, 나는 너를 미워한다"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지드의 산문 '지상의 양식'에 나오는 유명한 절규다. 지드가 제 가족을 혐오해서 한 말이 아니다. 가족 제도가 상징해 온 폐쇄성을 깨려는 삶의 태도를 강조한 것. 마크롱은 "가족이란 자유롭고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마크롱은 아내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세 자녀와도 잘 지내왔다. 선거운동에도 적극 참여한 서른두 살짜리 딸은 부모에 대해 "그분들이 함께 있어 행복해하는 걸 보고 나면 모든 의문이 사라진다"며 "우리는 수백만명의 다른 사람들처럼 재구성된 가족이고, 정상적 가정"이라고 언론에 선언했다.

/이철원 기자

마크롱은 공직 생활 중 문학 속의 명구(名句) 인용을 즐겼다. 그는 지난 2015년 경제산업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 의회에서 방위산업체의 민영화 정책과 관련해 야당 의원들과 논쟁을 벌였다. 의원들이 "위에서 시킨 대로 하느냐"고 질책하자 그는 "내 직책에 충실할 뿐"이라며 "나는 '자신을 벌하는 사람(L'heautontimoroumenos)'이 될 수 없다"고 엉뚱한 답변을 내놔 화제가 됐다.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 중 '우울과 이상' 부분에 나오는 시 '자신을 벌하는 사람'에 사용된 그리스어를 구사한 것. 보들레르가 '나는 상처이자 칼'이라고 한 시구를 떠올리게 하면서 마크롱이 칼자루를 쥐고 있음을 암시한 것. 당시 언론은 "욕설이 난무하던 국회의 수준이 모처럼 높아졌다"고 촌평했다.


마크롱은 지난해 장관직에서 물러나 정계에 뛰어들기 전 기자들을 만났을 때도 문학 작품을 인용했다. 그는 "당신이 바다에 가서 뒤집히고 싶지 않다면 배를 살 게 아니라 섬을 사라"고 했다. 마르셀 파뇰의 희곡 '파니'의 대사를 인용한 것. 원작에선 '항해의 위험이 두려우면 아예 섬을 사라'는 빈정거림인데, 마크롱은 새 모험에 나선 각오를 연기하듯 피력했다. 그는 정치 구상은 숨긴 채 "내 생각과 행동으로 당장 내년부터 프랑스를 변모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뭘 어쩌겠다는 것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마크롱은 곧 신당을 창당해 중도와 통합을 내세운 제3의 정치 바람을 일으켰다. 마크롱이 대선에 승리한 뒤 8일 발간된 리베라시옹은 1면에 새 대통령의 사진을 싣곤 "참 잘했어요(Bien joue)"란 제목을 달았다.


마크롱이 지난 7일 밤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 연설을 위해 루브르 박물관 앞 광장을 선택한 것은 중학생 연극 동아리에서 익힌 솜씨에서 나온 듯하다. 그는 조명이 희미한 광장의 구석에서 홀로 걸어나왔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점차 환한 연단으로 향했다. 어둠에서 광명으로. 그것은 무명 정치인에서 대통령이 된 영웅의 탄생 설화를 재현한 퍼포먼스였다. 유럽연합의 찬가로 쓰이는 '환희의 송가'를 굳이 고른 것은 유럽 통합의 정신을 재확인한 연출이었다. 작가 지망생이었던 마크롱, 그는 소설을 출간하는 대신 소설의 주인공 같은 삶을 빚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