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좌파로 분류되는 문재인 정권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했던 촛불 집회 주도 세력의 지분 챙기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청계광장과 대학로에서 각각 대규모 집회를 가진 민주노총과 법외노조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대표적인 예다. 민주노총은 ‘지금 당장 촛불 행동’ 집회에서, 위원장 출신인 현직 여당 의원이 지난 19일 “국민 통합을 위해선 박 정권 탄압으로 희생당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이 선행돼야 한다”고 했던 어이없는 선동을 복창하다시피 했다. 불법 폭력 시위를 주도해 복역 중인 한 위원장을 영웅으로 떠받들어야 한다는 식이다. 전교조도 창립 28주년 전국교사결의대회를 통해, 해직 교사도 조합원으로 인정한 위법 규약의 시정을 끝내 거부해 자초한 ‘법외노조 통보’의 즉각 철회를 거듭 요구했다. 초기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참여했던 촛불 집회의 순수한 취지를 변질시켰던 주장 그대로다.
이런 행태는 보수 우파 정권이 한 일은 모두 뒤엎어 ‘한(恨)풀이’를 하려는 것으로도 비친다. 문 대통령의 일부 행보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명박(MB)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4번째 감사원 감사를 지난 22일 지시한 것은 그중의 한 예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은 “비정상적 정책 결정이 ‘추진력’이란 이름으로 용인된 이유를 밝히기 위한 것”이라면서“명백한 불법 행위나 비리가 드러나면 상응하는 후속 조치를 밟을 것”이라고 덧붙여 적대적 인식을 보였다. 하지만 같은 보수 우파였어도 MB 정권을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처럼 여겼던 박 정권 때도 총리실 직속 4대강사업조사종합평가위원회가 ‘보(洑) 건설로 인한 유속 정체로 녹조 현상’을 지적하면서도 ‘홍수 예방과 수자원 확보 등 치수(治水) 효과가 크다’고 결론 내렸던 국책 사업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 지시에 대해 ‘정치 보복’이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이 MB 정부의 검찰 수사 때문이었다고 믿는 문 대통령이 23일 열린 노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의 ‘제사상(祭祀床)’에 올리기 위한 지시일 것이라는 말까지 시중에 떠돌았다.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인 지난달 4일 묘역을 참배하며 “대통령이 돼 다시 오겠다. 다시는 정권을 빼앗기지 않고, 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자랑스러운 후배들이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던 문 대통령이 추모식에서 “노 대통령님도 오늘만큼은 ‘야, 기분 좋다!’ 하실 것 같다”고 연설한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대선 기간에 TV 연설을 통해 “제가 대통령이 되면 엄청난 정치 보복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의 사전에 정치 보복은 없다”고 했던 문 대통령이 말과 달리 ‘증오의 한풀이 국정(國政)’을 펼 개연성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은 배경도 달리 있지 않을 것이다. 2014년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 정당 해산심판 청구 사건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해산을 반대했던 인사를 헌재 소장 후보로 지명한 일도 보수 정권 지우기를 통한 한풀이의 일환으로 의심할 만하다.
헌법 파괴를 기도한 혐의가 드러난 정당의 해산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점을 지명 이유로 버젓이 내세우기까지 한 데 대해, 설득력 있는 합리적 이유를 달리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필요한 헌재의 구성원 중엔 그런 재판관도 있을 순 있지만, 헌재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소장으로는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상식일 것이다. 이는 진보 좌파 정권일지라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지명한 것은 ‘보수 정권 지우기’의 한풀이로 비치기 십상이다. 헌재 결정 당시 국회의원이던 문 대통령은 “(청구 자체가) 정말로 반(反)민주적 폭거라고 생각한다”며 박 정권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데 이어 “국가 기관이 개입해 매우 안타깝다”고 거듭 개탄했다.
한국갤럽의 최근 설문 조사 결과는 문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88%로, 대선 득표율 41%의 2배를 훨씬 넘는다. 신선한 개혁적 행보들이 진보 좌파뿐 아니라 보수 우파 성향 국민 다수의 호감도 얻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풀이 국정’ 운영을 반복한다면 머지않아 민심(民心)이 떠날 수밖에 없다. 이를 잊지 말아야 문 대통령이 희망하는 대로 국민 통합을 이뤄낸 국민 모두의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時事論壇 > 時流談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언설태] 고의성 없으면 OK? 그런 식이면 인사기준이 무슨 의미 있나요 (0) | 2017.05.31 |
---|---|
[다산칼럼] 서울대를 없애자고? (0) | 2017.05.31 |
[다산 칼럼] '비즈니스 상황판'도 설치해야 (0) | 2017.05.29 |
부메랑으로 돌아온 문 대통령 '공직 배제 5대 원칙' (0) | 2017.05.28 |
[배연국칼럼] 누가 한국병을 치유할 것인가 (0) | 2017.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