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미국의 한국 핵무장론은 미·중 패권 경쟁과 맥이 닿아 있던 선택지 중 하나였다. 지난주 타계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12년 저서 『전략적 비전』에서 미·중 패권 경쟁 결과 미국이 아시아에서 한발 빼는 경우 한국은 고통스러운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안보를 조선처럼 명·청에 의존해 사는 방안과 역사적 반감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안보 협력을 하는 방안이 있는데, 미국의 강력한 지원 없이 일본이 중국에 맞설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 한국에 남은 옵션은 독자적으로 생존 방안을 찾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핵무장을 일컫는다.
반대로 G2(미국·중국) 같은 미·중 양강이 충돌하는 구도로 보는 게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로 중국이 고도성장을 멈추고 미국이 중국을 압도할 경우에도 우리에겐 쉽지 않은 안보 선택 상황이 도래한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셰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2004년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초판과 엊그제 나온 개정판에서 이런 상황이 오면 미국은 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주력을 본국으로 철수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경우 한국은 위험한 이웃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고 국가 생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핵무장을 거론했다. 물론 북핵 고도화 상황에서 한국 핵무장론을 주목하는 미국의 눈길은 당연히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핵 개발 연장선에서 미국 주도의 한·미 동맹을 흔들 수 있다는 경계와 감시 차원일 것이다.
북한이 정밀 타격이 가능한 미사일을 단거리·중거리·중장거리별로 완비하고 소형 탄두 등 정교한 핵무기 체계를 갖추면 이는 게임 체인저다. 파멸적인 선제타격 전에 일단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동결시키는 과제는 중국이 맡았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회동 이후 중국이 국경 봉쇄도 해보고 최근엔 북한의 400~600개 장마당 경제를 떠받치는 화교 자본을 뺄 수도 있다고 으름장도 놓는 모양이다.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는 대한민국이 핵무장을 하는 날 중국의 안보와 통일 정책도 꼬이지 않을 수 없다. 일본과 대만의 핵 도미노가 없으란 법도 없다. 요동치는 국제정치의 방정식 속에서 북핵이 지금과 달리 중국의 안보에 암적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중국이 더 늦기 전에 정교하고 세련되게 북핵 저지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용환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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