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사건을 보도했던 MBC 뉴스 화면 |
ⓒ MBC 뉴스 |
중앙예식장에서 지역구민의 결혼식 주례를 마치고 나온 양 의원은 깜짝 놀란 채 의경을 맞닥뜨렸다. "여긴 편도 3차선 도로입니다. 그런데 2차선 차도에 주차하셨네요. 교통 소통에 방해가 되니 차를 빼주십시오." 불법주차 딱지를 떼려던 경찰과 시비가 붙었다. "누구 차인 줄 알고 이러는 거야?" 양 의원이 의경의 얼굴에다 주먹을 날렸다.
손찌검을 지켜보던 100여 명의 시민들이 분노했다. "국회의원이 근무 중인 경찰관을 폭행할 수 있는 겁니까!" 양 의원이 황급히 차에 올랐다. 군중 사이를 헤집고 달아날 참이었다. 화난 시민들이 콩코드를 둘러쌌다. 의경이 차량 보닛 위에 올랐다. 차는 30m를 질주했다. 의경이 아스팔트 바닥에 나자빠졌다. 1989년 10월 30일 <동아일보>는 이를 '특권의식'으로 규정했다.
국회의원들의 '갑질', 김무성 의원뿐만이 아니다
김포공항 출국장 문이 열렸다. 그의 시선은 앞을 향해 있었다. 기민하게 손이 움직였다.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바퀴 달린 연두색 여행가방을 휙 밀었다. 마중 나온 수행원이 달려나왔다. 재빠른 몸짓으로 이를 받았다. 당사자는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부산 중구·영도구)이었다.
시민들은 '김무성 캐리어'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려주는 것으로 응답했다. '노룩패스(No Look Pass)'라는 생소한 스포츠 용어가 널리 퍼졌다. 농구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를 속이기 위해 시선의 반대 방향으로 공을 넘기는 동작 말이다.
김 의원은 "(게이트 안쪽에서) 비서가 보이길래 가방을 밀어줬다"며 "왜 이게 잘못됐느냐"고 반문했다. 이를 두고 윤종빈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일반 국민들이 볼 때는 그게 굉장히 권위적인 행동이었다"며 "본인이 '갑질'로 비치는 행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지적해도 그것이 잘못됐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점이 더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새삼 여야 의원들의 '갑질' 관행이 입길에 오르내린다. 의원 본인의 사적 용무를 보좌진에게 시키며 갑질을 부린다는 말들이 심심찮게 돈다. '갑질'의 근간에는 공사 구별이 희미하다는, 의원실 특유의 근로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 지난달 23일 오후 일본에서 귀국한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이 서울 김포공항 입국장에 도착하며 마중 나온 관계자에게 캐리어를 밀어 전달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실에서 일하는 A보좌관은 "보좌진에게 자기 집 앞마당 잔디를 깎으라고 시킨 의원이나, 심지어는 손녀 돌잔치 행사 보조역을 맡긴 의원도 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25일 페이스북 페이지 '여의도 옆 대나무숲(아래 '여의도숲')'에는 "자기 종교 기도문까지 직원이 쓰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신앙까지 외주화하다가, 정작 천국은 내가 갈 것 같다"는 글이 올라왔다. '여의도숲'은 국회 보좌진들이 익명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게시판과 같다.
19대 국회 때는 보좌진에게 "개밥을 챙기라"고 지시내린 의원이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현역 재선인 이 야당의원은 원래 살던 집에 키우던 개가 있었는데, 휴일에 별안간 보좌진에 연락해선 "지역에 내려가서 개밥을 줘라"고 당부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기 자식을 향한 뒷바라지가 과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여당의 한 의원실에서 일하는 국회 경력 5년차인 B보좌관은 "어떤 행정비서는 의원의 자녀 학업 관리를 도맡아 하더라"며 혀를 찼다. 당의 최고위원을 지낸 어느 중진의원은 라면, 고추장 등 가공식품을 잔뜩 사다가 택배 부치는 일을 보좌진에게 시켰다는 후문이다. 외국에 유학 나간 자녀가 현지 한국 식품점에서 직접 사는 게 비용상 저렴한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단다.
그 중진의원은 한술 더 떴다. 2~3년 전 한강 둔치에서 음식축제가 열린 적이 있었다. 자녀가 거기서 요리 판매 부스를 열었다. 일손을 돕게 할 요량으로 보좌진을 보냈다고 한다. 수행비서를 시켜 식재료를 나르는 일에 관용차를 동원했다. 행정비서는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드느라 진땀 뺐다는 얘기가 회자된다.
'국회판 최순실'은 공무에 간섭하고, 의원은 욕설 난사
▲ 심지어 보좌진에게 욕설까지 퍼붓는 국회의원도 있다. |
ⓒ pixabay |
툭 하면 보좌진들에게 폭언을 퍼붓는 의원도 있다. 2년 전 B보좌관은 업무 협조를 구하려 다른 의원실을 찾아갔다.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뜸 맞은편 사무실 한복판에서 여성 의원이 "이 개xx들아! 거지xx들보다 못한 xx들!"이라며 자기 방 보좌진들을 상대로 호통을 쳤단다. 방 너머 소리를 듣던 행정비서가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며 한 마디 했다. "저 방 또 저래. 예사로 있는 일이에요." B보좌관의 전언이다.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그 정도까지의 욕설을 하는 건 아니잖아? 인격 모독 수준이더라고."
'국회판 최순실'도 곳곳에 있다. 의원 부인이 공공연히 업무에 참견한다는 말들이 의원회관에 돈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지낸 여당 중진 의원의 아내는 행정, 일정 관리 등 보좌진 업무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고 감시한단다. 운영비 등 자금의 지출 내역을 들여다보고 사사건건 따지는 통에 보좌진들은 해명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여의도숲'에 올라온 얘기는 자못 허허한 감정마저 들게 한다. 대선 캠프에 파견됐다가 의원회관으로 복귀한 첫날 회식을 했다. 식사 자리에 함께 한 '의원 사모'가 모든 직원이 들으라는 투로 나를 겨냥해 "넌 아직 멀었다"는 말을 했다는 게 사건의 요지다. 글쓴이는 "아직 부족하고 배울 거 많은 건 인정하지만 선거 치른다고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는 게 우선 아니냐"며 "주말도 반납하고 출근하면서 쌓인 피곤함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온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보좌진=수족' 통념 벗어야... 전문가들 "국회가 직접채용해 의원실에 파견해야"
▲ 국회의사당 건물 |
ⓒ pixabay |
전문가들은 국회 보좌진 채용과 면직 권한을 국회사무처로 완전히 이관시키는 방안을 주장한다. '보좌진=국회의원의 수족'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다. 그래야 의원들도 공과 사를 엄격히 가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일개 의원에 종속된 고용관계에서 해방된 보좌진들은 전문적 역량과 정책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는 기자와 한 통화에서 "의원이 직접 고용하는 형태가 바뀌지 않는 이상 문제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며 "사무처에서 보좌진으로 가용할 수 있는 인재풀(pool)을 만들어놓고, 사무처에서 보좌진과 직접 고용 계약해 의원실에 파견하는 형태가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홍금애 법률소비자연맹 기획실장은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나니까, 면직 통보를 받으면 한 달 동안 유예 기간을 달라는 요구도 보좌진들 사이에서 나온다"며 "실질적으로 보좌진들을 정규직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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