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7.06.23. 02:41
우리에겐 역시 달달한 브로맨스란 어색했던 모양이다. 여의도 정치 얘기다. 지난달 1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5당 원내대표단과 함께 밥 먹고, 선물 주고받을 때만 해도 ‘진짜 협치 하는 거야?’ 싶었다. 하지만 본색이 드러나는 데엔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급기야 20일 국회 운영위에선 삿대질과 고성, 반말 등이 오갔다. “이제야 국회답다”란 냉소가 나왔다. ‘막장 드라마’도 욕하면서 본다는데, 역시 국회란 무릇 해머·최루탄·욕설 등 3종 세트가 출몰하는 ‘액션 누아르’라야 흥행이 되는 법. 근데 22일엔 또 다른 생뚱맞은 풍경이 연출됐다. 이날 오전 국회 정상화 합의가 결렬되자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느닷없이 눈물을 보였다. 이 신형 장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최루성 순애보? 분노의 복수극? 한국 정치에서 협치(協治)가 잘 안 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몇 가지를 꼽는다. 우선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다. 즉 ‘견제와 균형’을 원리로 하는 대통령제에 ‘연정과 협치’라는 내각제 요소를 입히는 게 구조적으로 무리라는 지적이다. 타협은 굴복이라 여기고, 물밑 협상은 뒷거래로 간주하는 사회 인식도 협치의 걸림돌이다. 구체적 액션플랜은 없이 무작정 구호만 외치는, 선명성을 강요하는 풍토에서 머리 싸매고 이견을 좁혀가기란 요원하다. 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진단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게 있으니, 바로 ‘나만 옳다’는 선민사상이야말로 협치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내 편은 언제나 옳기에 “임신한 선생님은 섹시했다”는 요상한 성(性) 인식을 가진 사람도 계속 감쌀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합리적 보수’라고 철석같이 믿기에 ‘추경 논의’라는 문구 하나를 받아들이지 않고 똥고집을 피우는 거다. 혹자는 ‘나만 옳다’는 자기 확신 없이 어찌 이 험한 세상을 버텨낼 수 있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협치’라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말았어야 했다.
여권에선 이번 내각 인선에 국민의당·바른정당 관련 인사를 포함시키지 않은 걸 아쉬운 대목으로 꼽는다. 자유한국당은 차치해도, 다른 두 야당을 일정 정도 포섭했다면 지금처럼 국회가 삐꺽거리진 않았을 것이란 소회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토록 개혁적인 정부에 감히 ‘사쿠라’들을 함부로 집어넣을 수 있느냐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겉으로 포용을 말하지만 “나는 정의요, 너는 불의”라는 ‘내로남불’의 이분법으로만 무장돼 있다면, ‘협치’란 그저 위선에 불과할지 모른다.
최민우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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