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6.24 백영옥 소설가)
언젠가 수중 사진가에게 결국 수영을 잘해야 멋진 바다 속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는
아마추어적인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가 꺼낸 말은 욕망의 절제라는 뜻밖의 대답이었다.
"일생을 두고 못 볼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고 해도 멈출 수 있어야 해요.
산소통의 남겨진 잔량을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멈추는 힘이 다음에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줍니다."
그는 다이버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기 구조(self rescue)라고 했다.
이 말은 내게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각자도생'을 연상시켰다.
각자도생은 조선시대 대기근과 전쟁으로 나라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할 때 백성들 스스로가 살아남아야 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2017년 우리도 각자도생 중이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역시 각자도생의 일면이다.
현 국제 정세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사적·경제적 공세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누군가의 도움을 쉽게 기대할 수 없을 때 기댈 수 있는 건 나 자신뿐 아닌가.
"괜찮아. 나에겐 내가 있잖아!"
이 말이 요즘의 우리에게 쓸모 있는 위로가 된다는 게 나로선 씁쓸하기만 하다.
비슷해 보이지만 '자기 구조'와 '각자도생'은 다른 말이다.
살아남으려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살아남은 이후의 삶은 전혀 다르다.
각자도생의 길은 늘 자기보다 더 약한 존재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
그것은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배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은 각자고생(各自苦生)이다'란 말은 그러므로 새겨들을 만하다.
무대 앞줄의 사람이 공연을 더 잘 보겠다는 마음에 일어서면 뒷사람, 그 뒷사람들도 결국 일어서게 된다.
이 연쇄적인 도미노는 결국 우리 모두를 일어서게 하고, 무대 앞줄의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앉지 못하니 정작 다리가 아파 공연의 본질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살아남으려 그토록 고생했지만, 살아남은 누구도 행복해지지는 못하는 구조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조선일보 사고 > 3만호 맞은 조선일보가 또 한번 달라집니다 (조선일보 입력 : 2017.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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