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초동여담]비키니와 北 미사일

바람아님 2017. 7. 6. 12:31
아시아경제 2017.07.05. 11:01

'비키니'의 탄생 스토리는 자못 흥미롭다. 71년 전 오늘인 1946년 7월5일 파리의 패션쇼에서 비키니는 처음 공개됐다. 최초의 비키니를 입은 주인공은 파리 클럽의 누드 댄서 미셸린 베르나르디니다.


비키니를 만든 디자이너 루이 레아르는 이 섹시한 수영복을 입기에는 기존 모델들이 너무 수수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모델들이 노출이 심한 비키니 입기를 꺼려 베르나르디니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최초의 비키니에 쓰인 천은 200㎠였다. 베르나르디니가 당시 수영장에서 열린 패션쇼 무대에 설 때 왼손에 들고 있던 작은 상자에 접어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고 한다.


짐작이 가지 않는다면 레아르의 이 말이 이해를 도울 수 있다. 그가 만들려 했던 비키니의 지향점은 이랬다. "결혼반지 사이로 빼낼 수 없으면 진짜 비키니가 아니다."

레아르는 비키니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 믿었다. 발표 나흘 전 미국이 핵폭탄 실험을 한 태평양 마셜 제도 비키니섬의 이름을 붙인 이유다. 핵폭탄만큼 충격적일 것이라는 의미도 담았다.


하지만 먼저 터진 것은 '인기 폭발'이 아닌 '분노 폭발'이었다. 외설적이라는 이유에서 바티칸은 '죄악'이라고 했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는 착용이 금지됐다. 비키니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1950년대 브리지트 바르도 등 여배우들이 영화에서 입은 모습을 선보여 화제가 되면서부터다.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다.


비키니는 그렇게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지만 그 이름을 빌려온 비키니섬의 사정은 달랐다. 비키니가 발명된 1946년을 시작으로 1958년까지 스무 차례 넘게 핵실험이 진행된 이곳은 '죽음의 섬'이 됐다. 미국은 비키니섬을 포함해 마셜제도 소속 섬에서 67차례 핵실험을 했다. 비키니를 입고 비키니섬에는 갈 수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

1968년 주민들은 비키니섬으로 돌아갔지만 방사능 오염의 심각성만을 몸에 새기고 다시 떠나야 했다. 뒤늦게 배상 판결이 내려졌지만 주민 상당수가 배상을 기다리다 숨을 거뒀다. 미국 의회는 비키니섬 일대의 오염이 제거되는 데 10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비키니섬의 처참한 현실은 결코 먼 옛날,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북한의 핵실험은 이미 우리 가까운 곳에서 비극을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장 4일 북한이 쏜 미사일이 떨어진 곳, 동해상이라고 무심히 쓰고 읽는 그곳의 생태계는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있을 것이다.


김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