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양상훈 칼럼] 충격 실험 매일 당하기

바람아님 2017. 7. 28. 08:18
조선일보 2017.07.27. 03:17

대선 한 번 이겼다고 매일 국정 실험 연속
성분도 모르는 약들을 좋다고 먹으라는데
성공하면 노벨상감이나 실패하면 몸은 어찌 되나
양상훈 주필

대통령 선거 한 번 하고서 이렇게 각종 대형 실험을 짧은 기간에 연이어 당해보기는 처음 같다. '비정규직 제로'는 공공 기관부터 시작해 민간 기업으로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비정규직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원인은 그대로 두고 결과를 없애라는 것은 정책 이론에는 없다. 감당할 수 없던 기업들이 몇 달 사이에 감당할 수 있게 될 수가 있나. 비정규직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만든다고 하지만 그 자회사는 어떻게 비용을 감당할까.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원자력발전소를 갑자기 무슨 괴물 취급하면서 '끝낸다'는 실험도 '설마' 했는데 정말 실행한다. '원전 사고 확률은 제로가 아니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사람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판단 기준이 돼야 하는 합리적인 선이 있다. 한국에서 지진 등으로 후쿠시마 같은 원전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이 '0'이 아니니 원전을 그만둬야 한다면 세계 원전은 전부 없어져야 한다. 그래도 찜찜하다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게 정부인데 오히려 앞장선다. 전례 없는 실험적 상황이다.


태양광·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로 원전을 대체한다는 것은 실험 이전의 문제다. 실험이란 '그럴 수 있다'는 개연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우리 자연조건이 태양이나 바람을 대규모 에너지원으로 쓰기 부적합하다는 것은 불행하지만 현실이고 사실이다. 1%도 안 되는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조금씩 올려 갈 필요는 있다. 하지만 국가 전력의 30%를 담당하는 원전을 대체할 수는 없다. 우리가 신재생에너지를 연구해야 하는 것은 원전을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조건이 되는 나라에 수출하기 위해서다.

최저 시급을 1만원으로 급격하게 올린다는 것도 해본 적 없는 실험이다. 어떤 정권인들 하고 싶지 않았겠나. 그렇게 올려주면 수많은 자영업자, 한계 기업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못 하는 것이다. 새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민간 업체 근로자들 월급을 대줄 테니 하라고 한다. 이런 발상도 가능하다니 놀랍다. 약한 기업 순으로 사업을 접거나 나라를 뜬다.


이제는 경제정책의 기본 틀을 뒤집는다고 한다. 경제성장으로 소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세금으로 소득을 늘려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한다. 일부 계층에게 세금을 나눠 줘 분배를 개선한다는 것은 들어본 얘기이지만 그걸로 경제성장까지 한다니 무슨 마술인가 싶다. 성공하면 문재인 정부가 단체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야 할 것 같다.


몇해 전 ILO(국제노동기구) 소속 좌파 학자들이 '임금 주도 성장'이란 것을 주장했고 이것을 국내에 번역 소개한 사람이 지금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문 대통령이 여기에 빠져 세미나도 했다고 한다. 이들이 마침내 자신들이 신봉하는 이론을 전 국민을 상대로 실험해볼 수 있게 됐다. 미국이나 일본, 일부 유럽 국가에서도 부분적으로 이런 실험적 아이디어를 정책화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면적, 전방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세계 처음이다. 그런데 우리보다 경험 많고 뛰어난 선진국들이 이렇게 쉽고 편하고 인기 있는 '소득 주도 성장'을 왜 전면적으로 도입하지 않을까라는 상식적 의문을 갖는다. 앞으로 교육 실험, 세금 실험, 안보 실험 등이 이어질 것이다.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새 정부가 세상을 너무 쉽고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자기 확신이 지나친 것 같기도 하다. 대담한 용기인지 어이없는 만용인지도 모르겠다.


실험은 연구실에서 하는 것이다. 반복된 실험으로 규칙이 발견되면 그때 이론이 된다. 그 이론을 사람에게 적용하려면 또 임상 실험을 거쳐야 한다. 임상 실험은 연구실 실험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임상 실험까지 마쳐도 실생활에 적용하려면 또 많은 과정을 넘어야 한다. 연구실에서도 끝나지 않는 실험을 곧바로 사람에게 적용하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생소한 감기약을 몸에 좋으니 먹으라고 하더니, 처음 나온 위장약, 한두 나라만 먹는 두통약도 먹으라고 한다. 이제는 성분도 모르는 위암약, 폐암약까지 잘 듣는다고 주장하면서 먹으라고 한다. 이렇게 실험 약을 한꺼번에 투여하면 신체가 어떻게 감당할지, 어떻게 변할지 걱정이다. 먹기 싫다고 안 먹을 수도 없다.


실화(實話)다. 한 병원에 아주 인기 있는 의사가 있었다. 환자가 다른 의사 몇 배는 몰렸고 거의 무슨 교주처럼 떠받들렸다. '그 선생님 약을 먹으면 낫는다'는 게 교리였다. 일부 동료 의사는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다. 정말 최후의 처방으로 소량을, 그것도 특정 환자에게만 써야 하는 약물을 남발한 것이었다. 모든 환자가 그 약만 먹으면 반짝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서서히 부작용이 쌓여 나중에는 약 타려고 앉아 있는 환자들이 눈이 풀린 채로 침을 흘리게 됐다. 그래도 그 의사는 정년퇴직할 때까지 인기를 누렸다. 책임도 안 졌다. 놀랍게도 환자들은 그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가 준 약 없이는 고통을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