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포럼>공론화委가 '민주적 절차' 아닌 이유

바람아님 2017. 7. 27. 09:31
문화일보 2017.07.26. 12:10



찬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 여부를 두고 ‘공론화위원회’가 지난 24일 출범했다. 공론화위원회는 원전(原電), 에너지 전문가와 지역 주민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청취한 후 공사를 영구 중단할지, 재개할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에 원전에 대한 찬반 입장이 확실한 인사들을 배제함으로써 편향성 논란을 최소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공론화위원회와 향후 구성될 시민배심원단은 탈(脫)원전 정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도구로만 활용될 개연성이 다분하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정책 결정을 위해 발전시켜 온 절차와 제도를 우회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국가에너지위원회 같은 기구와 이 제도, 또 이 기구를 통해 내려진 결정은 무시하고 시민배심원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원전 공사 중단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려고 한다. 원전 기술과 안전성 여부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원자력 전문가들이 제공해야 한다. 국가적 과제를 시민배심원이 결정한다는 발상은 일견 민주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엄밀한 전문적 논의를 바탕으로 신중히 내려져야 할 결정을 민간에 위임하는 것이며 확립된 민주적 절차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고자 한다면 선거를 통해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에서 논의하거나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할 수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것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구성됐다는 점에서 문 정부가 표방하는 탈원전 정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이미 고리 원전 1호기의 영구 중단을 결정한 데 이어 2022년까지 수명 연장된 월성 1호기도 가동 중단할 수 있다는 탈원전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공론화위원회와 시민배심원단은 정부가 제시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결정된 상태에서 출발한 셈이다.


탈원전 문제가 정치화한 상황도 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할 것이다. 이미 탈원전을 찬성하는 환경단체와 반대하는 원자력 전문가들은 격렬한 논쟁을 벌이며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찬성 측은 원전의 안전성 문제를 과장하고, 반대 측은 경제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원전의 운영 방식, 원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주장과 근거를 제시하고 있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공론화위원회는 활동 시한을 90일로 제한하고 있어 사안의 복잡성에 비해 정보의 정확성을 확인할 시간도 부족하다. 이번 공론조사는 착공하기 전에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게 아니라, 원전을 짓는 도중에 공사가 중지된 상태에서 영구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실시된다. 2조6천억 원으로 추산되는 공사 중단에 따른 손실과 비용, 주민과 건설업체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논의를 압도해 탈원전에 대한 객관적인 논의를 어렵게 할 것이다.


탈원전 정책과 공사 중단 결정은 향후 국가의 미래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출발점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중하게 논의돼야 한다. 원전 건설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같은 제도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 결정됐다면 ‘탈원전’ 정책 또한 이에 상응하는 과정을 통해 결정돼야 한다. 정책 결정을 위해 이미 확립된 제도적 절차와 논의 과정은 무시된 채 일방적 지시와 선언이 정책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공론화위원회는 무엇이 국가 이익에 바람직한지를 염두에 두고 탈원전 문제를 원점에서 논의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