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時評>國政은 고차방정식이다

바람아님 2017. 7. 26. 08:50
문화일보 2017.07.25. 14:00


요즘 문재인 대통령 내외의 행보는 매우 인상적이다. 청와대는 특권의 상징에서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으로 변하고 있고, 대통령 내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이웃처럼 다가온다. 수해 지역에서 봉사한 최초의 대통령 부인이라는 표현처럼 대다수 국민은 문 대통령 내외의 행보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제시한 많은 정책은 감동은커녕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문 대통령의 첫 지시는 인천공항공사의 1만여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을 연내에 정규직화하라는 것이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니 정규직화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가 단순히 정규직화하면 되는 문제였던가? 공기업들도 일부 기능은 아웃소싱을 통해 수행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그런 기능을 수행하는 민간 기업들에 시장 기회를 제공한 것이었다. 그런데 대통령 한마디에 다수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백번 양보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하는 공공기관들이 신입 직원을 그대로 채용할까? 당연히 신규 채용이 줄어들어 취업준비생의 기회가 없어질 수도 있다.


최저임금 16.4% 인상도 마찬가지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시급 7530원) 소득 주도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 이번 합의를 유도한 정부의 입장으로 보인다. 정말 그럴까? 당장 내년부터 9급 공무원 월급보다 최저임금이 더 많아진다.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업이익의 변화를 따져볼 것이다. 만일 인상된 최저임금에 따라 영업이익을 유지할 수 없다면 폐업하거나 고용을 줄이고 자동판매기를 도입할 것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노동시장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특히,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문 정부의 최대 정책 목표인 일자리 창출에 미치는 영향조차 논의된 바 없다.


대통령의 탈(脫)원전 선언이 청년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더 심각하다. 탈원전 선언에 따라 한수원은 약 30% 가까운 공정이 진행 중인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을 중단했다. 갑작스러운 공사 중단으로 관련 건설 일용직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수많은 주변 상인은 먹고살 길이 막막해졌다. 더 심각한 것은 산업 경쟁력의 미래다. 이는 50년을 키워 온 원자력산업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고, 막대한 전기 요금 인상에 따라 산업 경쟁력 약화는 불 보듯 뻔하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최대의 정책 목표로 제시해 놓고도 탈원전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수조 원을 들여 공공일자리를 창출하자면서 이미 창출되고 있고 앞으로도 수없이 만들어질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하루아침에 없애고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복잡한 고차방정식(高次方程式)을 1차방정식처럼 풀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까지 문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은 모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하고 장기적이다. 그만큼 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따지고 분석해서 최적의 정책 조합을 찾아내고 사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취임 두 달을 넘긴 문 정부는 주요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소득 주도 성장, 또는 환경 보호라는 정책 목표만 추구하고 있다. 마치 정책은 종합예술이라는 정책학개론의 첫머리도 읽어보지 않은 아마추어들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먼저 정답을 제시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려 하니 관료들도 문제를 극도로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필자는 이념이나 가치를 떠나 나라가 잘돼야 한다고 믿는다. 나라가 잘되려면 문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 문 정부의 성공은 대통령 내외의 감성적 행보로 국민의 감동을 자아내는 것만으로 이뤄질 수는 없다. 신중하고 책임 있는 정책 결정과 추진만이 문 정부의 성공과 대한민국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탈원전이라는 엄청난 정책 의제를 신중한 논의도 없이, 그저 3개월간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결정하겠다는 것은 고차방정식을 1차방정식으로 풀겠다는 것과 같다. 지금이라도 전문가들에 의한 신중한 정책 분석과 평가 과정을 거쳐 일자리 창출에 미치는 영향을 비롯한 다양한 가능성과 불확실성을 검토한 후 가장 바람직한 대안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