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作品속 LIFE

사라진 유녀의 감춰진 얼굴

바람아님 2017. 7. 30. 09:47
한겨레 2017.07.29. 13:48

 마쓰이 게사코의 <유곽 안내서>

증언으로서 소문은 생산자보다 그 대상에 초점이 있는 장르다. 아름답고 빛나는 사람을 노리되, 그들의 약하고 어두운 그림자를 좇는다는 면에서 음험하고 파괴적이다. 소문은 진실을 가장하지만, 거짓을 일정 부분 품고 있어서 늘 모호하다. 소문의 주인공들은 약하고, 파악할 수 없어 신비화되며, 쉽게 잡히지 않는다.


여기 한 여자에 대한 소문과 증언이 있다. 일본 에도시대의 유곽 요시와라에서 가장 손님이 많은 유녀 가쓰라기를 둘러싼 말들이다. 남달리 배짱 두둑하고, 총명하며, 미모와 매력이 출중하고, 마음의 행로를 짐작할 수 없는 여자. 그러나 사람들이 차마 입 밖에 내어 말하지 못하는 엄청난 소동을 일으킨 여자이기도 하다.


권력적 전복을 품는 공간

마쓰이 게사코의 <유곽 안내서>(박정임 옮김, 피니스아프리카에 펴냄)의 기본 구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일견 <유곽 안내서>는 제목이나 구성으로 볼 때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다. 유곽은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공간이며, 거기서는 계급적 권력으로 타인의 몸과 마음을 사는 것이 허용된다. 이런 곳에 대한 안내서라니, 일종의 풍속 스케치일까 싶어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다. 하지만 작가가 꼼꼼히 고증해 새롭게 건설한 공간으로서 유곽은 권력적 전복을 품고 있다. 여기에는 남편의 빚과 가족의 가난 때문에 팔려오는 여자가 있고, 순정을 주었으나 여지없이 배반당한 여자가 산다. 그럼에도 그들은 힘을 다해 살아남고, 운명을 향해 반격한다.


이야기는 정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어떤 청자가 요시와라를 돌며 여러 사람에게서 가쓰라기에 대한 소문과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유곽의 지배인, 시중들던 여자, 게이샤, 손님, 여러 사람이 각각 자신의 목소리로 한 여자의 삶을 구성한다. 이 소설의 미스터리는 결국 모두를 매혹했으나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여자 가쓰라기를 이해하는 데 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유곽에 왔으나 타고난 미모와 오기로 유곽의 대표 유녀가 된 가쓰라기는 누구였을까. 작품 초반에 그녀는 마치 창녀와 여신을 동시에 간직한 듯 신비롭게 그려질 뿐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 남자가 집요하게 가쓰라기의 발자취를 추적해나가면서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욕망과 동기가 있는 인간으로서의 옷을 입는다. 남자가 알아낸 것은 가쓰라기가 일으킨 사건의 진실인 동시에, 한 여자의 깊은 의지와 신념이다.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이른바 유녀들의 “첫날밤을 도와주는 것”으로 유명한 주류 도매점 이타미야의 한사이 영감의 회상이다. 그는 어느 시 모임에 갔다가 이전에 알았던 유녀가 모임 주최자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녀를 떠보기 위해 마츠오 바쇼(에도시대 하이카이 작가)의 “한집에서 새하얀 싸리를 보았었지”라는 시구를 읊는다.


“피를 빨고 우는 가을 모기 성가시구나”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이렇게 대꾸한다. “피를 빨고 우는 가을 모기 성가시구나.” 이전에 밤을 보냈던 여자가 자신에게 여전히 연연할 거라고 허망한 착각을 하는 남자에게 일침을 놓는 말이다. 한마디로, 힘이 빠진 가을 모기만도 못한 연약한 존재가 성가시게 굴지 말라는 것이다.


역사에서 우리는 “소문의 여자”에 대한 서사에 둘러싸여 살아왔다. 힘에 지고 사랑에 우는, 남자들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여자들. 하지만 여자 또한 존재의 명분을 실현하고, 자기 삶의 동기를 향해 돌진한다는 것을 <유곽 안내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보여준다. 독자가 마지막에 만나는 인물은 누구보다 강하고 대의를 위해 삶까지도 돌아보지 않았던 한 여자다.


박현주 추리작가·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