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두려움을 벗어던질 때, 상상치 못한 아름다움이 나오죠”

바람아님 2017. 8. 21. 08:41
[중앙선데이] 입력 2017.08.20 00:02
PM 6:46 영국, 코츠월즈, 브로드웨이 캐슬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PM 6:46 영국, 코츠월즈, 브로드웨이 캐슬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북쪽 대로변 밤 10시 16분.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뀜과 동시에 무용수 한 명이 입고 있던 검은 드레스를 벗어 던지며 차도 중앙으로 뛰어나간다. 차량과 행인의 행렬이 이어지는 도심 한복판,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무용수는 당당한 눈빛과 흐트러짐 없는 몸짓으로 춤을 추듯 거리를 걷는다. 사진집 『당신이 잠든 사이에 도시는 춤춘다(DANCERS AFTER DARK)』(시공아트)의 표지를 장식한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흑인 솔리스트 미켈라 드프린스의 멋진 사진이 탄생한 순간이다.
 
사진작가 조던 매터(Jordan Matter·51)는 2년간 뉴욕은 물론이고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독일 베를린의 작은 기차역과 영국 코츠월즈의 외딴 성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400곳이 넘는 장소에서 300명의 무용수와 나체 사진 작업을 했다. 촬영 시간은 한밤중. 모든 것을 벗어던진 채 추위와 위험에 굴하지 않고 대담하게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황홀한 비상(飛上)을 포착했다. 이 놀라운 작업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당신이 잠든 사이에 도시는 춤춘다』 한국어판을 최근 출간한 조던 매터를 e메일로 만났다. 


AM 2:44 뉴욕 주, 뉴욕,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AM 2:44 뉴욕 주, 뉴욕,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AM 1:59 뉴욕 주, 뉴욕, 리버사이드 파크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AM 1:59 뉴욕 주, 뉴욕, 리버사이드 파크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AM 12:37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AM 12:37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밤’과 ‘나체의 무용수’를 사진에 담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몇 년 동안 무용수들을 찍어오면서 나는 자신의 열정을 위해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댄서들의 용기와 의지에 무척 고무돼 있었다. 2014년 7월, 함께 작업한 적이 있는 서커스 연기자 조이 헐리가 밤늦은 시간 사진 촬영을 제안하며 ‘비가 올 것 같으니 젖은 머리에 누드로 찍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자정이 지나 거리의 가로등을 조명으로 그가 춤추는 모습을 촬영했고 상상도 못한 작품이 탄생했다. 그것이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댄서들이 나체여야 했던 이유가 있나.
“무용수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엄청난 시간을 쏟아붓는다. 그들의 몸은 극한의 노력과 인내심으로 빚어진 것이다. 무용수들의 몸에서 옷을 벗겨내면 열정에 이끌려 달려온 혹독한 연습의 결과가 섬세한 근육과 동작으로 생생하게 드러난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추구하려면 몽상가(dreamer)여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과감히 옷을 벗은 댄서들의 모습을 통해 두려움 없이 열정을 추구하고, 꿈을 향해 가는 여정을 멈추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힘든 작업이었을텐데, 무용수들을 어떻게 섭외했나.
“내가 촬영 도시를 정하고 SNS에 계획을 올리면, 그 지역의 댄서들이 사진을 보내왔다. 너무 많이 자원해 나도 깜짝 놀랐다. 사진을 찍는 환경은 보통 엄청나게 춥고, 너무 늦은 시간이며, 때로는 불법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참여했다. 때론 눈을 가리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목표를 향해 달릴 때 상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움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었다.”
 
부끄러워하거나 쭈뼛거리지는 않았나.
“옷을 벗기 직전엔 난처해서 웃거나 당혹스러워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 포즈를 잡고 나면 그들은 벌거벗은 채 거리에 선 사람들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공연하는 댄서들이었다.”
 
책에는 묘기에 가까운 포즈도 많이 등장한다. 당신의 구상인가.
“나는 촬영 전에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무용수들과 시내 중심가에서 만나 관심 있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걷거나 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장소를 선택하면 댄서들과 함께 포즈를 구상했다. 누드 촬영이라 어려움이 많았다. 무엇보다 사진에서 성기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포즈가 크게 제한됐다. 단체로 찍은 사진들의 경우, 폭풍처럼 촬영한 사진을 확인하니 한 사람의 성기가 노출된 경우도 있었다. 원하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 촬영을 해야 했다.”
 
조던 매터는 대학 때까지 야구 선수로 활약했다. 졸업 후엔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 우연히 보게 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의 사진전에 매료돼 2001년부터 인물 사진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2년 발간한 사진집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DANCERS AMONG US)』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반스앤노블 최고의 책 등으로 선정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일상의 희로애락을 재기발랄한 춤으로 표현한 이 사진들로 서울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에서 2013년과 2014년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그는 “한국 무용수들과의 작업, 한국에서의 전시는 너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시 초대를 받는다면 당장 한국으로 달려가겠다”고 했다.

AM 1:05 뉴욕 주, 뉴욕, 워싱턴하이츠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AM 1:05 뉴욕 주, 뉴욕, 워싱턴하이츠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PM 6:50 콜로라도 주, 스팀보트 스프링스, 얌파 강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PM 6:50 콜로라도 주, 스팀보트 스프링스, 얌파 강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PM 11:04 독일, 베를린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PM 11:04 독일, 베를린 ⓒDancers after dark, Jordan Matter

 
인공 조명을 쓰지 않고 디지털 보정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작업 이전엔 인공 조명을 전혀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밤 촬영이었고, 그럴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장소가 너무 제한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강한 스트로브 조명 대신 LED 빛의 밝기와 색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로토라이트(RotoLight)사의 조명을 썼다. 보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지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포토샵을 이용해 색상과 채도를 조정하지만 댄서의 다리 모양을 바꾸거나 점프 높이를 변경하거나, 배경과 인물을 합성하는 일 등은 절대 없다. 독자들이 보고 있는 댄서들의 모습은 내가 본 그대로다.”
 
촬영 시간을 사진 제목으로 했다.
“특별한 설명을 붙이는 것보다 촬영 시간을 제목으로 하는 게 보는 이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시간이 이른 저녁이면 촬영 장소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예측할 수 있을 것이고, 밤늦은 시간이면 사진을 찍기 위해 그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던 이유를 상상해볼 수 있다.”
 
촬영 중에 경찰에 체포된 적은 없나.
“30번 넘게 경찰의 제지로 촬영을 멈춰야 했지만, 다행히 체포된 적은 없다. 댄서들은 옷을 입은 채 정확한 동작을 반복적으로 연습한 다음, 찍을 준비가 되었을 때 옷을 벗고 신속하게 촬영 장소로 달려간다. 순간을 잡아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보통 30초면 촬영이 끝난다. 와인 병 위에 발끝으로 선 댄서의 사진은 3초 만에 촬영하기도 했다. 내가 컷을 외치면 무용수들은 재빨리 옷을 입었고, 대체로 그 이후에 경찰이 도착했다.”
 
파리 촬영 중 당신도 옷을 벗었다고 들었다.
“새벽 3시 반에 파리에서 촬영을 끝냈는데 한 댄서가 내게 함께 포즈를 취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20분 후 나는 발가벗은 상태였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주변에 있던 파리 시민들이 열정적으로 우리를 응원했고, 나는 지난 수년 간 무용수들이 묘사하던 믿을 수 없는 아드레날린을 마침내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주 성공한 아티스트지만 힘든 시기도 있었다.
사진작가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없다. 단 한 순간도.”
 
지금 작업 중인 사진은 어떤 것인가.
“다음 책은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에서 이어지는 작업이다. 전 세계의 다양한 상황에서 춤을 추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는다. 미국에서 2018년 가을에 출간될 예정이다. 이 책이 나오면 아마 서울의 큰 미술관에서 전시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음, 불러 주실 거죠?(웃음)” ●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