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9.08 신수진·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문학을 공부하면서 꿈에도 뵙기 어려운 스승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후학 사랑이 남다른 선생께서 몇 해 전부터 모교 대학원에서 강의를 맡아주셨는데, 나는 그의 명성보다 인격에
먼저 감복하고 말았다.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을 펜으로 까맣게 고쳐 갖다 주시곤 했기 때문이다.
맞춤법 하나부터 내용의 오류나 보완 방향까지 빼곡하게 채워진 원고를 매주 되돌려받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몰랐다.
선생님은 오히려 의아해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의 글을 보는 건 제가 '동인문학상' 심사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이제는 백발이 된 소설가 오정희 선생님은 그렇게 어린 학생들의 미욱한 글 한 편 한 편을 큰 인(仁)으로 대해주셨다.
글을 배우기 이전에 그 고아한 삶의 자세를 먼저 배울 수 있어 감사했다.
갓난아기 둘을 키우며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는 내게 선생님은 수십 년 전 당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들려주셨다.
젖먹이를 안은 채 글을 쓰셨을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아무리 피곤해도, 잠들어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앉게 된다. 선생님은 갓 스물을 넘겼을 때부터 이미 그 필력으로 세상의 찬사를 받았다.
질투와 경외심 그리고 이제는 인간적인 애정이 더해져 미련한 제자는 스승을 생각하며 밤새워 글을 쓰고 있다.
작가로, 선생으로, 어머니로 살아갈 때 날마다 다짐하는 것은 좋은 글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강인하고 아름다운 스승을 통해 나는 행운마저 초월할 수 있는 실력만이 진짜 내 것임을 배운다.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 했거늘, 나는 스승의 그림자쯤 기꺼이 밟을 각오로 쫓아다니며 가르침을 받고 있다.
영락없이 불초의 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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