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9.26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67] 가토 슈이치 '양의 노래'
지난 6월, 북핵 위기가 나날이 심각해지는데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미국에서 한·미 동맹을
위태롭게 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아 많은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얼마 후 귀국한 그의 일성(一聲)은
변명이나 해명이 아니고 "학자로서 학술대회에서 한 말을 갖고 왜 야단들이냐"는 것이었고
연이어 "(특보는) 돈도 조금밖에 안 주면서"라는,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이었다.
대통령이 '특보' 자리를 최저가 입찰자에게 맡긴 것일까?
특보의 봉급이 얼마나 하찮기에 해외에 나가서 학자의 입장만 인식하고 특보의 신분은 망각하는 것일까?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전국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키신저나 브레진스키급(級) 브레인을 등용하고 그에 걸맞은 보수를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안보에는 절약이 자살 행위일 수도 있다.
문 특보는 최근 송영무 국방장관이 김정은 참수 작전 가능성을 언급하자 이를 질책했다.
마치 김정은을 우리 대통령과 똑같이 예우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송 장관이 "학자 입장서 떠드는 문정인, 특보 같지 않아 개탄"스럽다고 반발했다.
이 말에는 학자란 현실도 모르면서 헛소리나 해대는 바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송 장관의 발언은 모든 학자를 격하할 취지에서 했다기보다는 문 특보를 더 심한 말로 비난하고 싶은 것을 참고,
나름 누그러뜨려 표현한 것이리라. 표현이 거칠기는 했지만 몹시 절박한 절규 같은 그 발언에 대해 송 장관은 청와대로부터
경고 '조치'를 당했다고 한다. 이제 청와대와 행정부 내에서 누가 감히 문정인 특보의 안보관에 이견을 말하겠는가?
일본의 작가이며 문학·문화비평가인 가토 슈이치는 자서전 '양(羊)의 노래'에서 자신의 대학 시절을 암울하게 했던
태평양전쟁에 대해 회고한다. 당시 모든 각료나 장성이 군국주의자는 아니었는데 어전회의 등에서 강경파만 큰소리를 내고
확신에 찬 주장을 했고 전쟁에 회의적이었던 각료들은 침묵했기 때문에 승산 없는 전쟁이 끝없이 확대되었다고 술회한다.
그 침묵의 대가로 일본은 인류사적 중죄인이 되었고,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했다.
집권 세력 내부의 조율 기능이 완벽해져 '실세'의 말씀에 '들러리'들은 고분고분 추종만 하는 정부가
가장 모범적이고 효율적인 정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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