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1.06.19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ㆍ번뇌는 별빛이라
마음 안에 번민이 없을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또 번민이 있으면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번민을 모르고는 인간이 될 수 없고, 번민에 사로잡혀서도 제대로 살 수 없는 거지요.
번민이 자유롭게 흘러 빛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길을 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조지훈 시인의 ‘승무’처럼 '세파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고백할 수 있을 테니까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 진짜 번뇌는 별빛, 아닌가요?
고흐는 어떻게 그렇게 거침없는 붓 터치로, 마음을 다 담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전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은 역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을 보고 있으면 분명히 느낍니다.고흐에게 그림은 길이고, 혈관이고, 생명이었음을.
고흐는 테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 두 남녀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린다. 나는,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거리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어내고 있어. 별은 심장처럼 파닥거리며 계속적으로 빛나고, 캔버스에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트와일라잇 블루,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나오고 있어.” < 각주 - twilight blue (트와일라이트 블루, 해질 녁에 볼 수 있는 청색) > |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1888~89년, 캔버스에 유채, 92*72.5㎝, 오르세 미술관, 파리.
귀가 욱신거린다는 것으로 봐서 귀를 자른 후의 그림이지요?
왜 멀쩡한 귀를 잘랐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질문으로 질책을 대신하는 사람은 욱신거리는 귓속에서 강물소리를
듣는 이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 강물 소리를 따라 강으로 걸어 나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빛 터지는 세상을 그려낸 신성한 작가는 알고 있었던 걸까요? 그 자신이 심장처럼 팔딱거리는 살아있는 별이었음을.
“저 맑음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 하는 고흐의 말을 곱씹어보면 마디마디 아픈 이 삶을 통과하지
않고 홀연히 아름다운 별빛으로 빛날 수도, 흐를 수도 없는 겁니다.
별은 얼마나 고통스러웠기에 저렇게 맑게 빛나는 걸까요?
고흐는 얼마나 독특한 운명이었기에 별빛 터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걸까요?
연인도 떠나고 친구도 떠나고 마침내 물감 살 돈도 없었던 고흐, 그 쓸쓸하고 팍팍한 삶이 앗아간 꿈이 저렇게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활한 것은 아닐까요?
저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는 그렇게 아파야만 했던 걸까요?
누가 그러더군요. 고흐는 정신병으로 최후를 맞았는데, 그렇다면 그의 그림도 위험한 게 아니겠느냐고.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생각합니다.
무의식의 비밀을 엿본 대가로 감당할 수 없는 형벌로 무너지면서까지 건져낸 그림이 ‘별이 빛나는 밤’이라면 위험한 만큼
가치 있는 것일 거라고.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그는 생레미 요양원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또 별밤을 그리는데, 그것이
바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고, 교회가 있고, 평화로운 마을이 있는 가운데 달과 별이 빛나는 ‘별이 빛나는 밤’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저 별밤 아래 비틀거리는 두 남녀는 술에 취한 게 아니라 별밤에 취한 것 같지요?
가슴에 별밤이, 별밤에 취한 연인이 살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이룩한 게 많은 삶이라도 그저 팍팍하기만 한 건 아닐까요?
<안녕, 내 소중한 사람이여>에서 아사다 지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슬픔이 밀려올 때는 별을 보라고. 그러면 자신이 얼마나 작고 시시한 일로 고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앓고 있는 문제가 시시해질 때까지 별을 보고 있으면, 잊고 있었던 진짜 소중한 것들이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트와일라잇 블루,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나오고 있어.”
아마도 고흐는 정말 오랫동안, 어쩌면 밤을 새워, 푸른 대기를 뚫고 나와 명멸(明滅)하는 하늘의 별을 우러렀나 봅니다.
별을 보지 못하면 꿈을 꿀 수 없고, 꿈이 없는 인생에게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기대 쉴 수가 없습니다.
승무도( 僧舞圖 ) 월전 장우성 [승무도] 1937 국립현대미술관 | -조지훈 시<승무>-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 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 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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