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사우디의 미래, 비키니와 홍해 프로젝트
(조선일보 2017.08.07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비키니·음주 허용하는 리조트… 사우디, 홍해 연안에 건설 발표
미래 권력 왕세자의 정치 승부수, 젊은 세대 바라는 자유 수용해
30대 국왕 등장할 가능성 높아… 전통주의 넘는 새 왕국 만들까
'비키니 리조트.' 지난주 세계의 이목을 끈 사우디아라비아발(發) 외신 제목이다.
이른바 홍해프로젝트 구상으로, 아라비아 반도 서부 해안 북쪽 200㎞를 따라 파격적인 관광 특구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비자도 면제하고, 복장도 자유로우며, 심지어 음주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소식이다. 일종의 해방구다.
사우디가 어떤 나라던가? 엄격한 이슬람 율법의 보루이자, 성지 수호를 자임하는 나라다.
관광 비자는 거의 발급되지 않고, 술도 엄격하게 금하며, 외국인 여성이라도 전신을 감싸는 아바야를 두르지 않으면
거리에 나설 수 없다. 그렇기에 비록 한정된 구역이지만 비자 없이 입국하고, 비키니 수영복도 허용한다는 발표는
무척 놀라운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2019년 착공해 2022년 완공할 예정인 홍해 휴양지 부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사실 오랫동안 한갓진 마을로 남아있었던 이 지역의 개발 잠재력은 높다.
아름다운 바다 홍해에는 때묻지 않은 50여개 천혜의 섬들이 흩뿌려져있다. 해안을 따라 기묘한 바위산들이 줄을 잇는다.
독특한 풍광이다.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면 화산과 용암지층도 나오고 동식물의 식생도 다채롭다.
투자 비용과 상관없이 환경 친화적으로 짓겠다는 의지도 높게 평가된다.
계획대로라면 창출하는 일자리와 실질 수익도 만만치 않을 듯 보인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수익성 높은 개발 프로젝트로만 볼 수는 없다. 정치적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일찍이 '비전 2030'을 내걸고 국가의 환골탈태를 약속하며 미래 권력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아가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다음과 같은 승부수다.
첫째, 왕세자는 집권 후 개발 중심축을 서부로 이동하려 한다. 내륙 네즈드(Nejd) 출신인 왕가는 그동안 막대한
수입원이었던 동부 알 하싸(al Hassa), 즉 유전이 몰려있는 걸프 연안의 만성적 분쟁에 지쳐있다.
유가 하락이 대세인 시대다. 여기에 시아파의 준동과, 바다 건너 이란의 부상도 부담스럽고 카타르 등 걸프 왕정 국가들의
움직임도 불편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홍해 프로젝트는 안정적인 홍해 연안, 즉 히자즈(Hejaj) 지역을 다시 주목한다.
새로운 거점을 중심으로 권력을 세우고 싶다는 왕세자의 의지와 전략이 담겨있는 것으로 읽힌다.
둘째, 시대 변화의 수용이다. 제한적이지만 상징성은 크다.
극단적 이슬람 보수 이념인 와하비즘을 신봉하는 왕실의 전통을 일부 허물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직자들과 보수인사들의 반발은 클 것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응원할 것이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상의 흐름을 알고 있는 세대다. 변화된 왕국을 기대한다. 왕세자는 이 점에 주목하며 파격적인 계획을 던졌다.
무함마드 빈 살만. /조선일보 DB
셋째, 미래 권력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이려 한다.
프로젝트 주체는 사우디 공공투자펀드(PIF)이지만 왕세자 본인이 의장을 맡고 있기에
전권을 쥐고 있다. 곧 아람코 기업 공개가 이루어져 막대한 현금이 조달되면 왕세자는
더 파격적인 프로젝트들을 내놓을 것이다. 이를 통해 승계 논란을 잠재우고 새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하려 할 것이다.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 변화의 면모가 보이기 시작하면
왕세자의 권력은 점차 기정사실화되기 때문이다.
30대의 젊은 사우디 국왕이 등장할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왕세자의 젊은 리더십이 승부를 걸어야 할 지점은 전통보다는 비전과 변화다.
일견 홍해 프로젝트는 여느 토목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왕세자의 정치적 미래가 달려있다. 만일 고루한 이슬람 전통주의를 혁파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젊은이들이 희구하는 개방과 자유의 물결을 수용한다면,
홍해 프로젝트는 새로운 사우디를 이끌어낼 것이다. 사우디는 기로에 섰다. 과거처럼 편하게 석유 이익에 매달려 살 수도,
아니면 힘들겠지만 미래로 도약할 수도 있다. 석유가 묻힌 걸프는 편하지만 한쪽이 막힌 닫힌 바다다.
반면 홍해는 인도양과 지중해를 잇는 열린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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