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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지진 충격파 안닿고 비켜가게… 미래 건물엔 최첨단 '지진 예방 망토'

바람아님 2017. 11. 28. 10:41

(조선일보 2017.11.25 최인준 기자)


[iF focus] 지진에 대응 주요 신기술


- 건축물 없는 듯 지나가
지름 10m 플라스틱 고리로 땅속의 기초 둘러싸면 위쪽으로 진동 전달안돼

- 지진파 접근 차단 '면진'
기초·건물사이에 면진장치, 전체가 미끄러지듯 움직여 좌우 흔들림 60%이상 감소


- 충격 상쇄 시키는 '제진'
타이페이 '101 빌딩' 처럼 '상층부의 추' 반대로 이동
중심 잡아줘 원상태 회복


- 무조건 튼튼하게 '내진'
전국 주택 8%만 내진 적용
고층 즐비 서울은 27%뿐
선진국에 비해 허술한 편


1년 간격으로 경주와 포항에서 대형 지진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국내에서도 건물 안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건물들은 선진국에 비해 지진 대비책이 턱없이 부족하다.

올 7월 기준으로 전국 주택 중 지진에 대비한 안전 설계가 적용된 비율은 8.2%에 불과하다.

고층 건물이 다수 몰려 있는 서울도 지진 대비 설계가 된 건물은 전체의 27%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건축 기술 발달에 따라 지진에 대응하는 기술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어 건물의 규모와 형태,

주변 환경에 맞는 지진 대응 설계 방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냥 견딘다…내진(耐震)


내진은 지진에 대응하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건물을 최대한 튼튼하게 지어서 땅 흔들림을 견디는 것과 같다.

지진으로 건물 구조가 변형되거나 손상되는 과정을 통해 진동 에너지를 흡수해 흔들림에 저항한다.

진동으로 인해 건물이 파괴되는 것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지진 피해는 주로 구조적으로 약한 곳에 집중된다.

말하자면 내진은 약한 곳은 버리고 전체 형태는 유지할 수 있도록 건물을 지탱하는 핵심 부위인 기둥과 내부 벽을

우선 강화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필로티 구조 건물은 이런 내진 설계의 기본 원리에 반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필로티 건물은 1층에는 기둥보만 세워 주차장으로 쓰고 2층 이상은 아파트 식의 건물을 올려놓는 형태이다.

이렇게 하면 내진 설계 범위 내의 지진이 오더라도 건물이 붕괴할 위험이 일반 주택보다 크다.


/그래픽=김충민 기자, 자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프랑스 프레넬연구소



◇충격을 상쇄하는 제진(制震)


내진이 지진파에 의한 땅의 흔들림을 그대로 견디는 것이라면 제진은 흔들림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이다.

건물에 별도의 완충장치(댐퍼·damper)를 설치하고, 그곳으로 외부 힘을 분산시켜 건물의 진동을 저감한다.

주로 베어링과 같은 완충장치를 건물 층마다 집어넣어 지진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방식을 쓴다.

자동차가 완충장치인 쇼크업소버로 자갈밭을 지나도 차체는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지진에 땅은 흔들려도 건물은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전 세계 고층 건물은 대부분 제진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고층 건물일수록 강한 바람에도 적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진이 가장 적합하다.

대표적으로 대만 최고층 건물인 타이베이 101빌딩에서는 87층에 있는 지름 5.5m의 거대한 공 모양의 추가 지진이나

바람에 의해 건물이 흔들릴 경우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댐퍼 역할을 한다.

지진으로 건물이 오른쪽으로 쏠리면 660t의 무거운 추가 왼쪽으로 움직여 건물이 빠르게 원위치로 돌아오도록 한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도 제진 방식은 널리 쓰이고 있다.

2012년 완공된 일본 도쿄의 스카이트리 타워(높이 634m) 중심부에는 350m 높이의 심주(心柱)라는 중심기둥이 자리하고 있다.

강한 철근콘크리트로 이뤄진 심주는 지상 150m까지 타워 본체와 철골로 연결돼 있지만 나머지 윗부분은 유압 완충장치로

연결돼 있다. 절반 이상이 사실상 타워와 떨어져 있는 셈이다. 타워가 지진으로 좌우로 흔들려도 가운데 심주가 중심을 잡아서

신속하게 원위치로 복귀할 수 있다. 1000년 가까이 끄떡없이 유지돼온 일본의 고대 목조 오층탑이 지진에 대비해 탑 윗부분의

심주와 본체 사이에 틈을 두던 공법을 차용한 것이다.


◇지진파를 피한다…면진(免震)


최근에는 건물에 전해지는 지진 에너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면진이 주목을 받고 있다.

말 그대로 지진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건물을 얼음판 위에 올려놓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건물 기초 부분과 상부 건물 사이에 베어링과 같은 면진 장치를 설치하면 건물 전체가 미끄러지듯 움직이게 돼

지진의 충격이 6분의 1에서 8분의 1로 줄어든다.

지난 1994년 미국 노스리지에서 발생한 규모 6.7의 지진으로 주변 병원들이 대부분 파손됐지만 면진 베어링이 설치된

서던캘리포니아대학병원은 무사한 데서 그 효과가 입증됐다.

일본방재협회에 따르면 건물 기초 부분에 면진 설계를 적용할 경우 좌우 흔들림 폭을 60% 이상 줄일 수 있다.


◇지진 앞에 투명해지는 건물


지진이 오면 아예 건물이 없는 것과 상태로 만드는 미래 지진 대비 기술도 한창 개발 중이다.

물체 주위에서 빛이 휘어져 지나가게 해 보이지 않게 하는 투명 망토처럼 지진파가 건물 주변으로 돌아가게 하는 방식이다.

프랑스 프레넬 연구소의 스테판 에녹 박사가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정 두께의 원형 고리로 건물 주변을 감싸면

지진파가 고리를 통해 휘어 갈 수 있다. 연구진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땅속에 들어가 있는 건물의 기초를 지름 10m의

플라스틱 고리로 둘러싸면 상당 부분의 지진파가 비켜가는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

에녹 박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지진파의 표면파는 원형 고리를 압축시켰다가 뒤로 돌아나가 다시 원래 방향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진의 공포에서 우리 집을 지켜줄 신기술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김충민 기자, 자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프랑스 프레넬연구소
  




재미있는 과학/ 지진에 견디는 건물


(조선일보 2017.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