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선정한 '2017 올해의 저자 10'. (조선일보 2017.12.15 어수웅·양지호 기자 편집=한승미) |
[2017 올해의 저자 10]
지난주 '올해의 책 10'에 이어, '올해의 국내 저자 10'을 소개한다.
가나다순으로 국문학자 김건우, 의사 출신 사회역학자 김승섭, 소설가 김혜진, 만화 그리는 공대생 맹기완, 시인 박준,
역사학자 설혜심, 작가 은유, 화가이자 에세이스트 이미경, 건축가 출신 음식평론가 이용재, 변호사이자 신부인 한동일이다.
올해는 추천위원을 75명으로 대폭 늘렸다. 좀 더 다양한 분야에서 좀 더 재능 있는 저자들을 추천하기 위함이다.
상대적으로 번역서 강세인 국내 출판 시장에서, 참신한 국내 필자의 발견을 시도하고 응원한다는 취지가
'올해의 국내 저자 10'에 있다.
'2017년 올해의 저자 10'은 작가·학자·번역가·출판평론가·출판사 대표·서점 대표 등 전문가 75명이 최대 3명까지 추천하고
조선일보 Books팀이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대상은 2016년 12월~2017년 11월 사이에 책을 낸 저자를 대상으로 했다.
그중 가장 많은 추천과 지지를 받은 고려대 김승섭 교수와 한동일 신부의 인터뷰를 커버 스토리로 싣는다.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고용불안·혐오 등 함께 아파하며 걱정을 듣다 10평이 채 안 되는 연구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벽에 붙은 '다짐'이었다. '매일 두 시간 읽기'. "정작 교수가 되고 나니 공부를 안 하더라고요. 겁이 났어요. 이러다가 끝도 없이 밀릴지 모르겠다. 읽지 않으면 안 되겠다." 고려대 김승섭(38) 교수는 그런 사람이다. 아직 그의 이름이 낯설지 모르겠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심지어 그의 첫 책. 그런데도 '2017 올해의 저자' 전문가 추천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총 75명 중 22명의 추천. 그 숫자를 전하자 앳된 청년 같은 교수님이 얼굴을 붉힌다. "사실 너무 아픈 이야기들투성이인데, 많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격려받은 느낌이에요." 명함에는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 부교수라 적혀 있다. 얼핏 추상적이고 관료적으로 압박하는 명사들의 집합. 그런데 어떻게 시인과 소설가와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대표들, 많은 추천위원들 다수의 지지를 받았을까. 과학자의 언어와 에세이스트 언어의 공존이 김승섭 문장의 힘이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는 이렇게 그를 요약했다. "과학적 근거, 논리적 설득력, 사회적 메시지, 여기에 사람에 대한 깊은 공감까지 갖춘 보기 드문 글." 그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드문 '사회 역학' 전공자다. 고용 불안·혐오·차별·재난 등이 어떻게 우리 몸을 병들게 하는가를 실증적으로 밝히는 학문. 98학번으로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3년 고려대에 임용됐다. "제 공부는 정책 입안자나 공무원에게 전달되는 게 중요한데, 아무리 논문을 써도 그분들이 잘 읽지를 않으시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좀 더 쉽고 간명한 글쓰기를 시도하게 됐어요."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 /장련성 객원기자
'제도가 존재를 부정할 때, 몸은 아프다-동성결혼 불인정과 성소수자 건강의 관계' '한국을 떠나면 당신도 소수자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우리 사회 인종차별' 등 각 장별 제목이 김 교수 글의 지향과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를 추천한 작가 제현주씨는 "엄정한 과학을 경유해 마음의 움직임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런 글은 드문 만큼 귀해서 글 쓰는 과학자 김승섭의 등장이 반갑다"고 했다. 안암동 연구실 한편에는 올해 열 살인 큰딸이 만들어 선물했다는 찰흙 인형이 있다. 제목은 '걱정을 들어주는 새'. 아빠가 세상의 어떤 걱정이든 함께 듣고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걸까. 아니면 그런 아빠의 걱정만은 자신이 들어주겠다는 걸까. 그는 올해 열 살, 여덟 살, 다섯 살 난 세 딸의 아버지. '천하무적'이겠다고 덕담을 건네자, 환하게 웃는다. "딸이 많을수록 오래 산다는 건 보건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딸은 아들보다 부모에게 자주 연락하고, 덕분에 노년기의 외로움 극복에 큰 도움이 되죠." 그에게는 세 딸이 있고, 사회적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과학자가 있다. 우린 이렇게 삶을 견딘다. 어수웅 기자 |
바티칸 변호사 한동일 신부
오전 7시~오후 11시, 연구·저술·번역… '세븐일레븐 글쓰기' "우테레 펠릭스(Utere Felix·읽고 행복하시길)." 로마인은 책을 선물할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라틴어 수업' 저자 한동일(47)이 Books 독자에게 건네는 첫인사였다. 그는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소속 변호사다. '상대성 이론'을 제창한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영국 총리 처칠도, 라틴어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그 어렵다는 '라틴어'가 2017년 한국 출판계를 흔들었다. 진앙(震央)이 그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에서 진행했던 라틴어 초급·중급 강의를 토대로 지난 6월 출간된 '라틴어 수업'은 10만 부 넘게 팔렸다. Books 추천위원 다수의 지지로 올해의 저자에 선정된 그를 12일 연세대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일반 독자가 왜 라틴어에 열광했을까. "냉장고에 있는 반찬 꺼내서 찬밥에 먹고 싶은가요? 제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도 같은 반찬을 두 끼 연속 주시는 적이 없었어요. 어머니가 요리에 공을 들이듯, 라틴어 수업이 뻔한 문법 강좌가 아니라 지금 서양을 만든 철학적 기원을 설명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죠." 그런데도 책은 나오지 못할 뻔했다. "100만원을 주머니에 넣고, 지난 1월 출판사 대표를 만났어요. 책 계약금을 돌려주려고 나간 거예요. 1년이 지났는데 글을 한 줄도 못 썼죠. 학술적인 글만 쓰다 보니 대중적 글쓰기가 더 힘들었어요." 학생들이 힘이 됐다. "한 학기 수업 끝나면 그 학기 제가 강의한 내용을 워드프로세서로 정리해 보내주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강의를 책으로 옮긴다 생각하니 훨씬 쉬웠습니다." 바티칸 변호사 한동일 신부. /이태경 기자
세네카, 키케로, 아우구스티누스의 라틴어 명문이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하지만 "각자 자기를 위한 숨마 쿰 라우데(최우등)"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전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글은 위로와 자기계발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은 저자의 삶의 무게로 설득력을 얻는다. 인터뷰 중간 중간 그는 왼쪽 가슴을 두드렸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아 몇 년 전 혈관 수술을 했다. 몸은 지금도 수시로 적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그래도 '세븐일레븐' 원칙을 지키고 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연구·저술·번역을 하는 생활이다. "제 몸에 남은 에너지가 얼마일지를 계속 생각해요. '로마법 법률 격언' '이탈리아 관용어 사전' 등 앞으로 내고 싶은 책, 하고 싶은 연구가 무수하니까요." 그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하는 책 속 라틴어 인용구는 이것일 것이다. "베룸타멘 오포르테트 메 호디에 에트 크라스 에트 세쿠엔티 디에 암불라레 (Verumtamen oportet me hodie et cras et sequenti die ambulare· 사실은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양지호기자 |
국문학자·역사학자·음식평론가·화가· 공대 대학원생… | |
대전대 교수 김건우
'사상계와 1950년대 문학'에 이어 펴낸 두 번째 책으로 2017년 올해의 저자가 됐다. 서울대 국문과 87학번인 대전대 국문과 김건우(50) 교수가 그 주인공. 핵심은 이분법의 파괴다. 친일과 반일, 독재와 반독재, 민주화와 산업화 등의 기계적이고 관념적 도식을 버리고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을 입체적으로 살핀다. 대상이 되는 인물은 장준하 김준엽 지명관 서영훈 선우휘 김성한 양호민 김수환 지학순 조지훈 김수영 등이다. 1920년 전후의 다섯 해 사이에 태어난 이들로, 대부분 학병과 서북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즉 보수와 진보,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인물들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부제 '학병 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 어수웅 기자 | |
연세대 교수 설혜심
설혜심(51) 연세대 사학과 교수가 이번에 택한 주제는 '소비'였다. 영국 근대 온천 발달을 다룬 '온천의 문화사'(2001), 18세기 유럽에서 자녀 교육 목적으로 세계 여행을 보냈던 풍조를 분석한 '그랜드 투어'(2013)에 이은, 역사 인문서 영역의 지속적 확장이다. 미국 시어스 백화점의 카탈로그 판매에서 현대 홈쇼핑의 기원을 읽고, 흰색 비누가 제국주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한다. 노예가 재배한 설탕은 먹지 않겠다는 '윤리적 소비'는 요즘 공정무역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도 설 교수는 서구 일상사 연구를 지속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설 교수는 국내 학계에서도 유명 저자 책을 번역하는 것 이상의 주체적 연구가 가능함을 보여준다"며 "소비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하는 대목도 매우 시사적"이라고 했다. 양지호 기자 | |
작가 은유
이 작가는 어떤 희망의 상징 같다. 우리가 스스로를 투명하게 고백하는 글을 쓴다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깨달음. 그리고 그 깨달음을 윽박지르지 않고 알게 해 주는. 필명 은유, 직유와 은유를 구분할 때의 그 은유다. 본명 김지영(46). 2016년 올해의 저자였던 문화연구자 천주희씨는 2017년 올해의 저자를 이렇게 추천했다. "성찰하는 여성의 글이 얼마나 건강하고 따뜻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표본 같다. 세상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의 시선과 언어를 통해 드러나고 연대한다"
구체적인 일상을 에피소드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산문을 쓴다. 가령 이런 주제. 엄마는 왜 크고 좋은 수박 한 덩이 마음껏 못 사 드시고 살았을까. 소재는 구체적이고, 문장은 아름답다. 2012년 첫 산문집 '올드걸의 시집'을 시작으로, '쓰기의 말들' '글쓰기의 최전선' '도시기획자들' 등이 모두 1만 부 이상 팔렸다. 요즘 출판사들이 앞다퉈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작가 중 한 명. 어수웅 기자 | |
만화 그리는 공대생 맹기완
수시로 격한 웃음이 찾아온다. 책을 덮자, 복근이 경련한다. 과장이 아니다. 저자는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누가 미적분(微積分)을 먼저 개발했는지 논쟁하는 과학과 수학 이야기로 독자를 눈물 나게 웃게 만드는 재능이 있다.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컴퓨터구조학을 공부하는 맹기완(27)씨가 쓰고 그렸다. 서울대 전기공학부 재학 당시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던 만화가 인기를 끌었고 올해 책으로 펴냈다.
만화의 '탈'을 쓴 교양 만화가 아니라, 진정 '재미있는' 과학 만화라는 게 이 책의 예외적 힘.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파인먼 같은 천재 과학자들의 정사와 야사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은 "과학 천재들의 지질한 모습을 밑자락에 깔아 독자들을 유인한 다음, 위대한 과학의 면모를 드러낸다"고 평했다. 맹씨는 "'카더라'성 이야기들은 낭설인 경우가 많아 신빙성 있는 자료를 조사해 그렸다"며 "생애 첫 출판물이 논문이 아니라 만화책이 될 줄은 몰랐다"고 재치있게 답했다. 양지호 기자 | |
시인 박준
스스로 시인이자 이 책을 만든 편집자 김민정은 이렇게 말했다. "그에게는 내게 없는 세 가지가 있다. 사랑, 죽음 그리고 가난." 시인 박준(34)의 두 번째 책이자 첫 번째 산문집.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와 이 산문집까지 단 두 권으로 대중이 사랑하는 이름이 됐다. 지난 7월 1일 출간된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이번 주 10쇄, 10만부를 찍었다. 공교롭게도 2012년 펴낸 첫 시집 '당신의…' 역시 이번 주 5000부를 추가로 찍어 10만부를 돌파했다고 출판사는 밝혔다.
사랑·죽음·가난은 한국인들을 무장해제시키는 키워드. 주어의 진솔한 고백을 듣고 나면 일단 같은 편이 될 수밖에 없는 정서들이다. 그래서 통속의 소비라는 비판도 있지만, 진실과 솔직을 정확하고 간명한 문장에 담아 읽는 사람에게 힘을 준다. 소박하지만 강력하다. 어수웅 기자 | |
음식 평론가 이용재
"명절이면 부쳐 먹는 전은 튀김의 열등한 형태다. 재료의 특징도 효율적인 조리법도 고민하지 않고 계란물부터 두른다." 건축가 출신 음식 평론가 이용재(42)는 한식에 직격탄을 날린다. '전통' '손맛' 같은 추상적 가치는 배제했다. '그래도 우리 음식인데…'라는 이유로 눙치는 법도 없다. 간혹 이건 음식판 '자학(自虐) 사관'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냉정하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는 "맛을 쌓아올리는 방법을 건축가 출신답게 블록 단위로 체계적으로 분석한다"며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식의 완성도만 평가한다"고 했다. 블록이란 짠맛,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의 다섯 가지 맛. "짜야 할 끼니 음식은 달고, 달아야 할 후식은 짜다"는 말을 이해하면 이 음식평론가의 예외적 문제의식을 알 수 있다. 미쉐린 별 받은 식당이 나왔다고 한식이 발전한 것은 아니다. 양지호 기자 | |
소설가 김혜진
여자로 태어나 늙어버린 자가 여자로 태어난 자식을 긍휼히 여기는 소설. 노숙자('중앙역')나 3류 인터넷방송 진행자('어비') 등 전작을 통해 세계와 불응하는 인간 속에서 사랑의 서사를 길어올려 온 소설가 김혜진(34)은 두 번째 장편으로 등단 5년 만에 가장 강렬한 조명을 받게 됐다. 동성애자 딸을 둔 어미의 1인칭 시점. 늙어 깨닫게 된 '삶을 지탱해주는 것'에 대한 신념은 딸에게 "너희가 가족이 될 수 있어?" 절규하게 하고, 그 외의 부질없음에 몸서리치게 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세계를 거부하는 법. 세계와 불화하는 법."
저자는 복잡하지 않은 세대론을 구사해가며 지금 한국 사회를 조용히 폭로한다. 당연하게도 '여성'의 화두가 빠질 리 없다.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을 예감하는 생애. 아들이 아닌 딸의 생애. 소설은 발간 3개월 만에 판매 부수 3만 부를 넘겼다. 정상혁 기자 | |
화가 이미경
편의점 혼밥 세대도, 구멍가게 세대도, 이 책에서 위로를 얻었다. 이미경(47) 작가는 구멍가게 그림 연작과 에세이를 엮은 첫 책으로 올해의 저자가 됐다.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둘째를 낳고 붓을 놓았다. 우연히 만난 구멍가게가 다시 그림을 그리게 했다. 펜으로 그린 세밀화이지만 구멍가게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만남과 소통을 상징하는 너른 평상, 빨간색 우체통, 아름드리나무를 꼭 함께 그렸다.
소박하고 정겨운 구멍가게 그림과 담담한 글로 풀어낸 본인 경험담은 사람 냄새를 그리워하게 했다. 윗세대에는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는 "아이돌 앨범도 아닌데 주변에 선물하겠다며 이 책만 10권씩 사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한국을 따뜻하게 한 구멍가게에 영국 BBC방송도 주목했다. 책은 내년 중 프랑스·일본·대만에서도 번역 출간된다. 구멍가게의 온기는 지구촌으로 퍼져 나간다. 양지호 기자 |
'예쁜 글'과 '강력한 글'
어수웅·Books팀장
"논문 내용은 어렵더라도 글 자체는 예뻤으면 좋겠어요."
'2017년 올해의 국내 저자 10'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고려대 김승섭 교수의 대답입니다.
대중과 만나는 지점을 어떻게 고민하고 있느냐는 질문 뒤였죠.
그는 의대를 졸업한 의사이자 역학(疫學)을 공부하는 과학자. '예쁜 글'이란 표현이 예쁘더군요.
지난주 그는 해외 학술 저널에 '외모 차별과 건강'을 주제로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답니다.
건조한 과학자라면 논문 주제와 제목이 다르지 않았겠지만, '예쁜 글'에 대한 김 교수의 고민은 창의적인 제목을 낳았습니다.
'Lookism Hurts'. 우리말로 번역하면 '외모지상주의가 (사람을) 아프게 한다' 정도 되려나요.
동일한 실험, 동일한 데이터의 논문이라면, 관건은 글솜씨에 있겠죠.
물론 단순히 글솜씨만으로 타인을 설득하기란 어려울 겁니다.
올해의 저자로 뽑힌 또 한 명의 이름 은유. 본명은 김지영입니다.
82년생 김지영이 아니라 71년생 김지영.
엄마이자 아내이자 단독자인 은유는 지금까지의 여정을 "공중 삼회전의 난도가 따르는 삼인분의 삶"이라 표현하더군요.
서른다섯부터 마흔다섯을 경유하는 여성 삶의 고백인 은유의 책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는 모성을 수행하는 엄마이자
존재를 이행하는 자아(自我)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책에도 썼지만, 그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지 않았습니다.
작가나 학자에게 우리가 지닌 선입관과는 다른 궤적이죠.
여상을 졸업한 작가라는 수식(修飾)이 자칫 코드화·대상화 되는 것을 은유는 경계하지만,
작가를 꿈꾸는 많은 평범한 남녀에게 희망을 준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물론 자신의 구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고 자기 삶을 재구성해오는 글쓰기를 10년 넘게 이어온 성실함이
오늘의 전제임은 당연하겠죠. 그 사이 딸아이는 미취학 아동에서 중학생이 되었고, 잠꾸러기 아들은 군에 입대했고,
자신은 글 쓰는 사람 은유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직유는 유사성이고 은유는 이질성이죠. 상관없어 보이는 존재들을 연결하는 사람이 작가일 겁니다.
'2017년 올해의 국내 저자 10'에는 그렇게 다른 존재를 이은 이름들입니다. 새로운 이름들이 많습니다.
김승섭 교수와 만화 그리는 공대생 맹기완, 그리고 화가이자 에세이스트 이미경은 첫 책으로, 소설가 김혜진과
국문학자 김건우, 그리고 시인 박준은 두 번째 책으로 '올해의 저자'가 되었습니다.
내년에도 이들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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