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12.25 조중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국방과학硏 무인기 추락하자 연구진에 "제작비 물어내라"
기업은 시행착오 용납 안 해… 실패 쌓여야 성공 이루는 법
조중식 디지털뉴스본부 취재팀장
이라크전 당시 대부분의 미군은 철저히 방비된 대규모 전진작전기지(FOB)에 주둔했다.
극장과 수영장, 배스킨라빈스 가게까지 갖춰진 곳이었다.
이곳을 거점으로 반군 소탕 작전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식이었다. 미군이 기지로 돌아가면
도시의 골목은 다시 반군이 차지했다. 보복을 두려워한 주민들은 미군에 협조하지 않았다.
'반군 격퇴와 이라크 평화 확보'는 요원했다. 상황은 악화됐다.
이라크 북부 탈 아파르에선 달랐다.
이곳을 담당한 미군 기갑수색연대장은 FOB에 주둔하지 않고 도시 깊숙이 들어갔다. 소규모 전초기지 29개를 구축해
각 블록을 경비했다. 반군의 잔혹한 공격에도 작은 기지들을 끝까지 지켰다. 그러자 변화가 생겼다. 주민들이 미군에 협조하기
시작했다. 숨어 있던 테러리스트를 고발하기도 했다. 알카에다의 보복에 자신들을 내팽개치지 않을 것이라 믿은 것이다.
이 부대는 이라크 파견 미군 중 거의 유일하게 한 도시에서 반군을 모두 몰아내는 전과를 올렸다.
탈 아파르 수색연대장은 지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있는 허버트 R 맥매스터다.
그는 1차 걸프전 때 탱크 9대를 지휘해 이라크군 탱크와 장갑차 90대를 파괴한 전쟁 영웅이다.
탈 아파르 승전 이후 맥매스터 대령은 어떻게 됐을까. 2006년, 2007년 연거푸 장군 진급에서 떨어졌다.
큰 위험을 무릅쓴 맥매스터 방식은 직속 상관의 방침과는 달랐던 것이다.
승진을 원했다면 미군을 패배에서 구하기보다는 상관을 존중해야 했던 것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차세대 정찰용 무인기를 개발하면서 시험비행을 하던 시제기가 추락했다.
사고를 조사한 방위사업청 방위사업감독관실은 무인기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의 부주의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방사청은 지난 7월 연구원 5명에게 시제기 제작에 들어간 67억원을 청구하라고 ADD에 통보했다.
1인당 13억4000만원씩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연구원들이 패가망신의 위기에 내몰리지 않기를 바랐다면 '우리 것을 개발해보자'고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
실패를 감수하는 도전적인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말았어야 했다.
중앙 관청에 앉은 관리·감독자들에게 현장에서 벌어지는 시행착오는 가차 없이 응징해야 할 폐단인 모양이다.
그들이 다이슨 청소기 스토리를 알 리가 없다.
다이슨은 원심분리기를 장착한, 먼지 봉투 없는 진공 청소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그 청소기로 프리미엄 진공 청소기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이슨을 먹여 살리는 제품이다.
이것이 다이슨의 성공 스토리일까. '위대한 실패' 스토리이다.
다이슨은 진공 청소기를 개발하기까지 5127개의 시제품을 제작했다가 버렸다.
5127번의 누적된 실패가 한 번의 성공을 만든 것이다.
한 대기업 CEO로부터 들은 말이다.
"인사를 하다 보면 현장 부서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것 같다. 영업은 사람의 힘으론 어찌해볼 수 없는 시장의 부침이 있고,
개발도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지. 그렇더라도 원칙이라는 게 있으니 인사고과를 박하게 줄 수밖에 없다.
현장 출신들 인사 기록을 보면 그런 상처들이 하나씩은 다 있더라.
본부 관리 조직 출신들은 그런 게 없어. 승진을 시키려고 할 때 최소한 흠은 없는 거지."
올 연말도 어김없이 '새 출발을 합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적지 않게 받았다.
인사란을 채운 새 이름들 뒤에는 그 숫자만큼 떠난 사람들의 이름이 숨어 있음을 안다.
그들 중에는 '무덤'이라고 불리는 해외 근무지에서 악전고투했던 사람이 있었다.
신제품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쳐 떠난 개발 임원도 있었다.
기업의 성장은 상처투성이로 현장을 지킨 이들에게 분명 빚을 지고 있다.
부가가치란 무언가를 개발해서 생산하고, 판매하거나 서비스하는 것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이 현장을 중시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아직 관리 인력이 승승장구하는 경우가 많다.
상처 입은 현장의 전사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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