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프리즘
첫 번째로 하고 싶은 일은 ‘범사에 감사하기’다. 어렸을 때는 행복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듯 노력해서 얻는 것이라 믿었다. 이제는 소소한 것이 인생이고 보물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행동으로 실천하는 게 쉽지 않다. 우선 새해엔 우리의 문화 유산을 제대로 알고 잘 이해해야겠다. 유럽 지인들이 한국에 왔을 때 고궁이나 사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화려한 단청에 감탄했다. 특히 건물의 수명이 천년을 넘었다는 점에 가장 놀랐다. 석재로 성이나 주택을 짓는 유럽에선 천년을 버텨낸 나무 건물이 신기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필자가 유럽에 가면 고성의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 양식을 칭찬하며 구경할 뿐 한국처럼 나무를 활용하지 않았는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유럽의 수많은 전쟁과 생활 여건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저 주어진 대로 바라보기만 했다.
여기에 더해 ‘무재칠시(無財七施)’를 실천하고 싶다. 불교에서 나온 말로 돈 없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다. 그중에서도 미소 띤 얼굴로 상대방을 대하는 화안시(和顔施)를 마음에 새긴다. 웃는 얼굴로 소소한 일에도 감사한다면 좀 더 나은 하루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익숙한 일에 더 집중하고 싶다. 은퇴 이후 자주 듣는 얘기가 도전이다. 새로운 것도 좋지만 기존에 알고 있는 것에서 한발 더 깊게 들어가고 싶다. 과거에 와인을 마실 때는 무조건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이후 와인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시음회도 다니면서 알게 된 게 본인 입맛에 맞는 와인이 최고라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와인 값이 비쌀수록 맛이 좋을 확률은 높아진다. 하지만 나의 솜씨로는 그 정도까지 맛을 구별할 수 없으니 내 입에 맞는 와인이 가장 맛있다.
운동을 위해 산을 가거나 산책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유명하거나 높은 산을 찾기보다 동네 주변이나 가까운 뒷산을 가야겠다. 전에 모임이 주최하는 등산에 나섰다가 무릎을 다쳐 고생한 적이 있다.
다행히 치료는 잘 됐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의 체력을 알지 못하고 모임 분위기에 휩쓸려 험한 길을 올랐다가 다친 것이다. 젊었을 때는 곧잘 친구들과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했다. 사소한 실수도 젊다는 이유로 용서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 이 나이에 분위기만 쫓다간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내 자신을 잘 모르고 했던 일의 대가다.
그래서 아무리 새로운 것들이 마음에 동기를 부여한다고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보다 새해엔 익숙한 것을 더 익숙하고 가깝게 만들어 가고 싶다. 이 두 가지만이라도 잘 지켜서 내년 연말엔 스스로에게 조그만한 마음의 상장이라도 주려고 한다. 그 다음 해에는 또다시 새로운 것에 대해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전 밀레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