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12.26. 03:14
정치는 예능 아닌 국민 목숨줄, 다윗의 기개와 지략을 지녀야
대혼란의 한 해 떠나보내고 새해는 사랑과 용서가 물결치길
칠십은 족히 넘은 두 여인은 앙상한 다리를 일자로 뻗고 앉아 불땀을 흘렸다. 자식 서넛은 키웠을 젖가슴은 쪼그라붙고 팔등은 검버섯으로 덮였으나 기력 하나는 정정하여 한증막 모래시계가 두 번 엎어졌다 뒤집어지는데도 숨 한번 깔딱 않고 문답을 나누었다. 오가는 그들의 화제는 건강부터 국제 정세에 이르기까지 버라이어티했다. 발뒤꿈치엔 고된 노동의 훈장이 켜켜이 쌓였으나, 세상 읽는 안목은 여느 학자 못지않아서 귀 기울일 만하였다.
#
"뭘 먹어 겨울 생굴마냥 오동통허냐."
"숨만 쉬어도 살 된 지 백만 년이다."
"밤중에 먹어 그렇지."
"한밤에 먹어야 맛난 걸 어쩌냐. 여럿이 먹어야 꿀맛인 걸 어쩌냐."
"서방님은 무탈하시고?"
"각자 인생 추구하며 산 지 오래다."
"아침밥은 챙겨드려야지."
"생사만 확인하면 된다."
"'밥이 하늘'이란 시가 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면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거란다."
"오십 년 밥 해먹인 것만도 노벨평화상 감이다."
"벽을 지고라도 남편이 있어야 한다고, 먼 길 떠나보낸 뒤 후회막심했다. 따뜻한 밥 한술 더 먹여 보낼 걸 가슴이 미어졌다."
#
"자식들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소문난 효자 효녀라 들었더니."
"지들 가르치려 허리가 하늘로 솟도록 일했는데도 그 공을 모른다."
"공 알아달라고 키웠더냐."
"그 정성 백 분의 일이라도 나한테 쏟았으면 요 모양 요 꼴은 아닐 것인데. 세계일주를 했어도 몇 바퀴 돌았을 것인데."
"꼭 가봐야 맛이냐. 무르팍만 아프지."
"죽기 전 짤스부르그(잘츠부르크)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짤스부리?"
"사운드 오브 뮤직. 잘생긴 대령이랑 과외선생이 춤추는 구라파 작은 도시."
"오다가다 송장 될라. 요단강부터 건널라."
"죽어서 돈을 싸 들고 가는 것도 아니고."
"내 이름으로 통장 하나 있는 게 어디냐."
"그래서 여태 찬 새벽에 남의 건물 청소하러 다니냐?"
"놀면 뭐하냐. 우울증만 돋지."
"일로 치면 너나 나나 하버드 갔다."
#
"중3 손자놈이 집을 나갔다."
"그 집 아들 내외처럼 학식 있고 덕망 있는 부모가 어디 있다고."
"덕망 두 번만 있다간 삼대가 망하겠다. 애완견 똥개는 물고 빨면서 지 배로 낳은 자식은 쥐 잡듯 한다."
"어려선 천재라고 자랑이 늘어지더니."
"다섯 살 코흘리개를 학원으로 돌려치더니 바보가 됐다."
"대학 가려면 별수 있나. 입시가 국시인 나라에서."
"지네 부장한테 받은 스트레스, 이웃 여자들 탓에 생긴 울화를 죄 없는 내 손자한테 푼다. '널 사랑해서 혼낸 거 알지?' 요런다."
"우리도 부지깽이로 때리며 키웠다."
"멍든 자리에 안티푸라민 발라주며 후회는 했어도 그런 위선은 안 떨었다. 자식에게 보약은 아비의 따뜻한 눈길, 어미의 다정한 말 한마디인 것을."
"부모도 사람인데 부처마냥 살 수 있나."
"몸집만 컸지 어른이 어른이 아니다."
#
"대통령이 밥을 혼자 먹고 왔다고 시끄럽더라."
"뙤놈들한테 당한 게 어제오늘 일이냐."
"시정잡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도 자존심은 지키라는 말이 있다."
"그게 피도 눈물도 없는 국제사회 질서."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질 한방으로 거꾸러뜨렸거늘."
"어떻게든 전쟁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털끝 한 올 건드리면 국물도 없다는 기개를 보여야 얕보질 않는다."
"못 배워 무식한 우리보다야 낫겠지. 민심 무서운 줄 알겠지."
"정치는 광대놀음 아니고 온 국민 목숨 줄인 것을."
"풍전등화 아닌 적 없던 나라가 반만년을 이어왔으니 또 살길이 열린다."
#
"늦둥이 손녀가 많이 컸겠다."
"별 따라 마구간에 온 양치기들이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했다고 하니 '할머니, 양치기가 뭐예요?' 묻더라. '양치는 사람이지 뭐여' 했더니 고갤 갸웃하면서 '그럼 양아치는 뭐예요?' 하더라."
"새해 소원은 무엇이냐."
"아프지 않고 잠들 듯 떠나기, 자식들 병원비로 싸우지 않게 바람처럼 떠나기."
"궁상을 떤다."
"윤여정이는 스페인으로 식당 차리러 간다더라."
"다 쇼다. 내 집에서 지어 먹는 밥이 최고로 맛있다."
"이서진이 또 간다니 샘이 나 그런다."
"낭군님 아침밥이나 따숩게 지어드려라. 며느리 따라 할라."
"어이쿠, 땀 난다. 양동이로 들이붓는다."
"시원~하다. 해묵은 속병이 달아난다."
"극락이 따로 있나. 무릎 안 쑤시고 허리 안 아프면 거기가 천국이지."
'人文,社會科學 > 日常 ·健康'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 다짐 두 가지 (0) | 2018.01.01 |
---|---|
[오늘과 내일/김갑식]Love is .. (0) | 2017.12.31 |
[정선근 교수의 백년 쓰는 척추관절 운동법] [5] 스쿼트로 엉덩이 근육부터 발목까지 튼튼 (0) | 2017.12.26 |
‘팔방미인’ 몸 흔들기 운동 5 (0) | 2017.12.26 |
[감성노트] 심상 (0) | 2017.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