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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홀린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의 실체는

바람아님 2018. 2. 7. 08:23

매일경제 2018.02.06. 14:54

 

<구성용의 로보월드>

AI로봇 소피아는 역시 똑똑했다. 얼마전 소피아가 '4차 산업혁명, 소피아에게 묻다'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간 후 한국 내에서는 한결같이 소피아의 논리적이고 똑 부러지는 '똑똑한' 답변을 찬양하는 반응 일색이었다. 게다가 소피아의 답변을 보고 감탄하며 두려워하는 사람들까지 나오기도 했다. 소피아는 미국의 한 토크쇼에 출현해 "인류를 지배하겠다"고 했던 발언이 농담이었다고 밝혔지만 한국에서는 단 몇 분 동안의 대화만으로 이성 집단을 원하는 데로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서울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한 소피아 [사진 출처 : 매경DB]
극적 효과는 한 정치인과의 만남에서 두드러졌다. 그는 소피아와 포옹하고 입을 맞추고 얘기를 나눴는데 소피아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지만 귀는 잘 들리는지 띄엄띄엄 이어진 정치인의 영어 질문을 한 번 되묻지도 않고 술술 대답했다. 지구상의 어떤 사람이라도 그런 질문을 한 번에 알아듣고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텐데 말이다.


공개된 내용을 보면 소피아는 토론을 위해 질문지를 미리 받아 학습했으며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습'을 일방적인 '입력'과 동일하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미리 '학습'한 소피아를 이해한다고 해도 그와 농담을 섞어가며 살가운 대화를 나누는 한국 정치인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진짜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자연스러웠고 연기라고 하기에는 대본 읽는 실력이 형편없었다.


그날 소피아가 정복한 것은 한 정치인과 참관한 언론사의 기자들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수많은 똑똑한 로봇 전문가, 그리고 인공지능 전문가들도 포함된다. 그들 중 누구도 이를 공식적으로 비판하거나 그날 소피아가 선보인 기술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석해서 알려주지 않고 있다. 소피아의 지능 없는 인공지능 기술은 그 많은 전문가에게조차 들키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정말로 한 나라의 이성을 정복할 만하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아직도 소피아의 인공지능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소피아가 한국을 방문하기 3주전 인공지능의 대가 얀 르큰 교수는 이미 이런 일갈을 남겼다. "it's complete bullsh*t", "It's not. It has no feeling, no opinions, and zero understanding of what it says.”

얀 르큰 교수의 트위터 [사진 출처 : 트위터]
로봇공학자인 UCLA의 데니스 홍 교수도 이같은 우려를 남겼다. "진짜가 아닌 것을 진짜 처럼 보여주면 나중에 진짜가 나타나더라도 사람들은 거기에 올바른 대응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데니스 홍 교수의 페이스북 [사진 출처 : 페이스북]
오히려 진짜 지능을 가졌다고 할만한 로봇은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소피아의 방한 일주일 전 지구 반대편 독일 뮌헨에서 열린 DLD(Digital, Life, Design) 컨퍼런스에서는 또 다른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했다. 라이프치히 대학교 사미 하다딘(Sami Haddadin) 교수는 프란카 에미카(Franka Emika)라는 로봇을 들고 나와서 약 20분에 걸친 시연을 각 분야 전문가들 앞에서 선보였다. 혹시 몰라서 덧붙이는데 필자는 사미 하다딘 교수나 에미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로봇은 사람이 안전하고 쉽게 동작을 가르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열쇠를 열쇠 구멍에 끼우는 작업 스스로 반복해서 학습할 수도 있다. 하다딘 교수는 에미카의 모든 기능을 20분 안에 훌륭하게 직접 선보였다. 직접 시연을 보거나 유튜브에서 영상을 본 어떤 전문가도 시연이 연기거나 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인공지능 로봇을 진짜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DLD 컨퍼런스에서 에미카(오른쪽)를 시연중인 사미 하다딘 교수 [사진 출처 : 유튜브]
그리고 이 진짜 인공지능 로봇은 어느 누구도 지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후 이어진 패널 토의에서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Carl Benedikt Frey) 교수는 하다딘 교수와 함께 지능로봇이 가져올 미래 산업과 노동환경의 변화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했다.


한 주 동안 지구의 양쪽에서 일어난 이 두 장면을 보며 한 가지 가설을 세워봤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지능이 필요 없는 게 아닐까? 물론 사람보다 알파고, 비트코인, 소피아를 더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구성용 피킷 선임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