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발표된 대입 개혁안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진보 정권이 들어섰는데 왜 교육정책은 점점 산으로 가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어서다. 예를 들면 주입식 교육 때문에 한국 학생들의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진단이 그렇다. 주입식 교육은 정말 창의성을 떨어뜨릴까? 2012년 피사(PISA. 1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력평가로,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3학년이 참여한다)에서 한국 청소년들은 창의적 문제 해결력 영역에서 2위를 했다. 이 테스트에서 최상위권을 휩쓴 나라들은 일본, 대만, 중국 등 모두 주입식 교육을 하는 곳이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창의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재료가 필요하다. 지식이 바로 이 재료이다. 레고 블록을 1000개 가진 아이가 100개 가진 아이보다 더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지식이 많을수록 그것을 새롭게 연결할 가능성도 커진다. 기억은 모든 지적 활동의 토대이다. 명의의 예리한 진단이나 석학의 대담한 통찰은 전공 영역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럼 한국 교육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피사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 교육의 모습은 모든 면에서 훌륭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바로 학교 간의 성취도 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입시제도가 삼년이 멀다 하고 계속 바뀌는 원인이 사실 여기에 있다. 대학 입학 전형을 많은 사람들이 가장 공정한 제도라고 생각하는 수능으로 통일할 수 없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몇몇 잘나가는 학교들이 명문대 티켓을 다 가져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부는 지방 일반고에도 기회를 주기 위해서 교과전형이나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같은 내신 중심의 전형을 늘리도록 장려해왔다. 하지만 교육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해도 입시전형의 세부사항을 결정하는 것은 각 대학이다. 내신 성적을 믿지 못하는 대학들은 사실상 고교 등급제를 사용하여 학생을 선발한다. 그 결과 학종은 금수저 전형이라는 욕을 먹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어째서 지방 일반고는 공부를 못하느냐는 것이다. 진보적인 교육자들은 이런 질문을 싫어한다. 성적을 가지고 아이들을 줄세우면 안 된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혁신학교의 학력 저하를 지적했을 때 조희연 교육감의 반응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혁신학교는 공부에 대한 관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성적이라는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항변이었다.
그런데 혁신학교가 모델로 삼는 핀란드의 교사들은 정작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를 방치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차별이고 불평등이라고 말한다. 기초학력 미달인 아이들은 나중에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없고 사회생활에 동등하게 참여하기 어렵다. 이는 단지 그 아이들이 경쟁에서 졌기 때문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의 문해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학종 덕택에 지방 일반고 학생들에게도 명문대에 갈 기회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의 성과는 전체 학생의 성취도를 놓고 따져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는 기초학력 미달자의 비율이 그 자체로 교육 불평등의 지표로 사용된다. 지방 일반고 학생들에게도 제대로 배울 권리가 있다. 현재의 교육개혁은 학교 간의 격차를 그대로 둔 채 줄세우는 방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교육에서 진보란 무엇인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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