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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산책] 규율 적고 수평한 사회일수록 행복감 높다

바람아님 2018. 6. 18. 06:47

(조선일보 2018.06.18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부하에게만 강한 사람 많을수록 '지위 높으면 特權도 당연' 인식
힘의 적정선 모른 채 권력 남용… 북유럽 행복감도 개인주의와 연관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행복한 국가들이 가진 문화적 특성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담은 논문 한 편이 최근 권위 있는 심리 학술지에 발표됐다.

캐나다 캘거리대학의 스틸(Steel) 교수와 동료들이 방대한 자료와 관련 연구들을 종합 분석하여

내놓은 결론은 경제적으로 고속 성장한 한국 사회의 장기적 숙제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이 논문은 행복감이 높은 문화가 가진 대표적인 특성들 개인주의 낮은 권력 거리감(power distance),

낮은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idance)를 꼽았다.


먼저 행복한 국가가 갖고 있는 개인주의적 문화에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각 사람의 '고유한 생각'과 '의지의 존중'이다.

사적(私的)인 삶이 타인이나 집단의 목표에 의해 침해되는 것을 최소화하며,

일상의 선택도 집단의 의지가 아닌 개인의 의사 표현으로 결정된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행복감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유럽 내에서도 개인주의적 성향이

가장 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권력 거리감 심리학자 호프스테데(Hofstede)가 처음 소개한 개념인데,

힘의 사회적 분배에 대한 문화 구성원들의 태도를 일컫는다.

권력 거리감이 큰 문화에서는,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가진 특권과 영향력이 매우 다르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권력 거리감이 높을수록 국가 전반의 행복도가 낮을 뿐 아니라, 소위 '갑질' 현상도 자주 일어난다.


회사 상관이 직원에게 업무 관련 지시를 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지만 집안 심부름까지 맡기는 것은 무분별한 권력 행사다.

왜 우리는 이런 일들을 자주 목격하며,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우선 가해자들의 과도한 특권의식이 문제이지만, 사회적 지위는 곧 무한한 힘이라는 의식을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관련 있다. 누군가를 대하는 생각과 행동이 그의 명함을 보기 전과 후 과도하게 바뀐다면, 그 명함의 주인은 자기 지위가 갖는

힘을 과대평가하게 된다.


즉, 아랫사람에게만 강하고 윗사람에게는 과하게 숙이는 사람이 주변에 많을수록 힘을 가진 자들의 자기 존재감이

부풀어진다. 그래서 자기 힘의 적정선을 판단하지 못한 채 권력을 남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불확실함에 대한 불편함이 큰 문화일수록 행복감이 낮다고 한다.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높은 개인이나 문화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찾고 만든다.

해외여행 중 식당 웨이터가 두꺼운 메뉴판을 그냥 던져 놓고 사라지면 한국인들이 당황하는 게 그런 사례이다.

무엇을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눈치를 보지만, 구세주는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서울의 한 식당에는 '①떡 만둣국 ②비빔국수 ③잔치 국수.

이 식당 메뉴 가운데 맛있는 순서이니 주문 시 참조하라'는 문구가 벽에 붙어 있다.

매우 친절한 팁이다.


하지만 불확실성 회피는 이런 친절한 문구만 탄생시키는 게 아니다.

수많은 지침과 규율을 만들어내며 일상의 피로를 누적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골목마다 흉물스러운 주차 금지 표지들이 가득하고 분리수거에 대한 안내 방송이 매일 저녁 아파트 거실들에 울려 퍼진다.

심지어 비누로 손 씻는 순서를 적어 놓은 공공 화장실도 있다.


함께 살며 지켜야 할 일들이 있지만, 매사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규율이 많을수록 그 효력은 없어진다.

모두가 평생 초등학생 같은 대우를 받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자유 의지를 갖고 산다는 느낌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범칙금이 없거나 누군가 보는 사람이 없으면, 쉽게 버리고, 헤치고, 취하게 된다.


이런 세 가지 문화적 특성은 국가의 경제나 사회적 인프라를 감안해도 여전히 행복에 영향을 준다.

즉, 국가의 행복은 객관적 '하드웨어'뿐 아니라 일상에서 공유되는 가치나 행동 같은 '소프트웨어'에 의해 좌우된다.

행복은 수직으로 세워진 사회보다는 옆으로 누운 사회, 힘이 정상적으로 분배되며 자유가 느껴지는 곳에 찾아온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산책] 목차




규율 적고 수평한 사회일수록 행복감 높다   (2018.06.18)


장기 기증 활발한 지역은 행복감도 높다   (2018.04.09)
행복해지기 위해 시험보다 중요한 것들 (2017.11.20)

긴 휴가, 준비되셨나요?(2017.09.25)

"소셜미디어 속 멋진 인생에 흔들리지 마라"(2017.07.24)

축구든 인생이든 즐겨라 (2017.06.05)

물건보다 경험을 사고, 혼자 쓰기보다 함께 즐겨야 (2017.04.24)

행복,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몫 (조선일보 2017.03.13)

설날 최고의 덕담, "더 많이 움직이세요"(조선일보 2017.01.25)

돈의 함정(조선일보 2016.12.12)

마음의 벽, 조금만 낮춘다면(조선일보 2016.10.31)


주고, 받고, 갚는 인생(조선일보 2016.09.19)

금메달의 기쁨? 석 달이면 녹는 아이스크림(조선일보 2016.08.1)

칭찬받고 추는 춤, 좋아해서 추는 춤(조선일보2016.06.29)

결혼은 행복, 이혼은 불행?(조선일보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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