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돌아가신 외삼촌은 교직에서 정년퇴직한 후 새롭게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고, 쉬지 않고 오카리나 연습을 하셨다. 가족 모임에서 만나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고 여쭤 보면 늘 한결같이 대답하셨다. “잘 늙어가고 있지! 하하.”
하지만 밝고 유쾌한 외삼촌의 노후생활은 기대보다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언어장애 치매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명랑한 성격은 변하지 않아, 데이케어센터에서도 말씀은 못하지만 잘 웃는 어르신으로 이름을 얻으셨다. 요즘도 문득 ‘잘 늙어가고 있다’며 웃으시던 외삼촌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노년, 노후를 이야기하면 예외 없이 ‘잘’ 늙고 싶다고들 한다. 과연 잘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늙어야 한 번뿐인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30년 가까이 노인복지 현장에서 직접 만난, 셀 수 없이 많은 어르신의 모습에서 하나씩 배우고 찾아낸 노년기 유형을 살펴보면 그 고민이 조금은 해결될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는 어느 유형에 해당하는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은지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하나, 열혈 청년형. 나의 사전에 노년이란 없다! 아직 늙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계속 강조한다. 건강관리와 체력관리도 젊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며 일에서도 결코 물러날 생각이 없다. 이런 분이 갑자기 쓰러지거나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아무것도 정리돼 있지 않아 가족들은 당황하고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나이 듦과 늙음이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기는커녕 인정조차 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둘, 조로(早老)형. 어차피 늙어갈 인생 뭐 별거 있나! 지나치게 서둘러 노인인 양하는 유형이다. 누구나 먹는 나이를 애써 외면하며 밀어낼 것도 아니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앞당겨 맞이할 것도 아닌데, 마치 인생의 신비를 다 알아차린 듯 군다.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못지않게 노년도 인생의 한 시기이므로 느끼고 배우며 내면에 채워야 할 것들이 있게 마련인데 지레 늙어버려 텅 비어있다. 사실은 노년에 대한 바른 이해도 없고 자신의 노화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셋, 내 마음대로형. 무조건 나를 따르라! 매사에 깃발을 높이 들고 앞장선다. 다 큰 자식들의 의견이나 변화한 사회환경 같은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이로 돈으로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해 독선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니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이 없다. 자신은 최선을 다하는데 아무도 몰라준다며 섭섭해 하기 일쑤인데, 그 이유를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면 남는 것은 외로움과 소외감뿐이다.
넷, 산타클로스형. 빨간 옷의 산타클로스는 크리스마스에만 오는 것은 아니다! 죽을 때 가져갈 것이 아니라며 자신이 가진 돈, 시간, 정성, 기술, 재능, 마음, 사랑 등을 골고루 나눠주는 분들이다.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니 홀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며 거저 받은 것이 많은 인생이었다는 깨달음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가지고 있는 선물이 많지 않아도 걱정이 없는 까닭은 이분들의 선물 주머니는 화수분 같아서 나눠주면 줄수록 계속 선물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남김없이 주고 가는 그분들의 인생 자체가 가장 커다랗고 귀한 선물이다.
다섯, 잘 익은 열매형. 잘 익은 노년, 성숙한 노년! 자신의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변화를 제대로 수용한 분들이다. 그 잘 익은 열매를 적극적으로 남에게 나눠주는 분도 있지만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어 자기 내면을 성숙하게 만드는 데 쓰기도 한다. 반드시 남을 위한 헌신과 봉사만이 성숙함의 증거는 아니다. 어떻게 늙음을 받아들이고 늙음과 더불어 사이좋게 살아가면서 인생의 마지막 단계를 의미 있고 깊이 있는 성찰로 채워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뒤따라오는 세대들에 귀감이 될 수 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자리며 역할을 적절하게 잘 물려주며 비록 힘없고 돈 없을지라도 노년의 향기를 진하게 전해주신다.
“그 나무에서 가지들이 새로 뻗고, 올리브 나무처럼 아름다워지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향기롭게 될 것이다.”(호 14:6, 새번역)
유경 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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