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조선의 걸크러시]〈6〉조선 여인들의 '워너비' 강남홍

바람아님 2018. 10. 24. 08:59
동아일보 2018.10.23. 03:01
“제가 비록 관상 보는 사람만큼의 안목은 없지만 이 시대 최고의 인물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그래서 이 한 몸 의탁하여 천한 이름을 씻어볼까 합니다.”

―남영로의 ‘옥루몽’ 중에서


유명인을 동경하고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현대의 ‘워너비(Wannabe)’는 고전에서도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드러난다. 남영로가 쓴 한문소설 ‘옥루몽’에는 조선시대 귀감이 될 만한 숙녀, 자색을 지녔으나 투기가 심한 여인, 자색과 무예가 뛰어난 이민족 여성, 그리고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교방 기녀들이 등장한다. 이 여성들은 미모를, 우아한 성품을, 그리고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특출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을 뛰어넘는 여성이 있으니, 바로 소설 속 여성 주인공 ‘강남홍’이었다. 영특함과 출중한 재능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꾼 여인이다. 그는 양창곡을 최고의 인물로 점찍고 자신의 한 몸을 그에게 의탁하여 신분 상승을 꿈꾼다.

강남홍은 미천한 교방 기녀이다. 그러한 그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인재를 찾는 일이었다. 자신의 신분을 알고서도 존중해 주고 지기(知己)가 될 수 있는 남자를 찾기 위해 시 짓는 재주를 시험하였고 이를 통해 양창곡이라는 최고의 인물을 발굴한다. 그런데 그가 찾은 인재는 아직은 보잘것없는 평범한 서생이었다.


평범한 서생이 어떻게 그의 신분을 바꿔줄 수 있을까? 그는 먼저 양창곡을 신분이 높은 숙녀와 맺어준다. 자신의 처지로는 양창곡의 사회적 위치를 바꿔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강남홍이 결코 양창곡에게만 의지하여 신분 상승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정절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해서는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였고, 기존의 당찬 모습에 영웅의 기상까지 갖춰 나갔다. 이러한 강남홍의 영웅성은 양창곡의 인생을 바꿔 놓는 힘이 된다.


“세상에 믿기 어려운 것은 적국의 간인이군요. 제가 벽성선과 다 같은 기방의 천한 출신이라 지기로 교유하면서 고귀한 문중에 들어온 이래 조금도 투기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벽성선이 자기 솜씨를 스스로 자랑하여 상공의 뜻에 부합하면서 저를 무안하게 만들 줄 어찌 생각했겠습니까?” 이처럼 그는 조선시대 여성들에게 금기시되었던 투기까지 과감히 부린다. 신분이 낮은 강남홍은 양창곡 주변의 여인 중 하나인 벽성선이 음식 솜씨로 양창곡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고 에둘러 타이른다. 그런데 강남홍의 투기하는 말을 아무도 막지 않는다. 양창곡과 그의 아버지가 강남홍의 투지와 대찬 성격을 인정하여 그녀와 의기투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남홍은 집안의 다른 여성들을 무시하지 않고 여러 여성과 경쟁이 아닌 상호 존중의 유대로써 지기를 맺는다. 여성들 사이에서 경쟁과 암투 없이 우위에 설 수 있는 방법은 여성들의 선망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다.

강남홍은 조선 후기 문인 남영로의 손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가 보여준 꺾이지 않는 의지와 적극적인 노력, 사랑하는 사람과의 낭만적인 로맨스, 그러면서도 신분에 굴하지 않고 모든 사람 앞에서 당당히 주도권을 쥐는 모습을 조선의 여인들은 꿈꿔봤을 것이다.


임현아 덕성여대 언어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