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한삼희의 환경칼럼] 트럼프가 초래할 '공유지의 비극'

바람아님 2018. 11. 19. 17:38

(조선일보 2017.03.04 한삼희 수석논설위원)


유엔 분담금 내지 않던 美, 9·11 터지자 5억달러 납부… '테러 혼자 못 막는다' 깨달아
환경 문제 역시 상호의존적… 모두 동참해야 해결 가능
큰 나라가 솔선해야… '자국 우선주의'는 파국 불러


한삼희 수석논설위원한삼희 수석논설위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의회 연설에서 "내 업무는 세계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일엔 미 무역대표부(USTR)가 "미국 국민은 세계무역기구의 규제가 아니라 미국 법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다. 이런 '미국 우선(America First)' 정책은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 것일까.


우리가 송도에 유치한 녹색기후기금(GCF)이라는 국제기구가 있다.

선진국 출연금으로 개발도상국 기후 적응을 돕자는 기구다. 여기에 미국이 우선 30억달러를 내기로 했다.

미국은 아직 낼 돈이 20억달러 남아 있는데 트럼프는 이걸 내지 않겠다고 해왔다.

트럼프는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도 했다.

개도국이나 세계 전체를 위한 공동 행동에선 발을 빼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유엔 분담금도 납부하지 않아 유엔 속을 썩이곤 했다.

그런 미국이 2001년 9·11 직후 미납 유엔 분담금 5억8200만달러를 서둘러 냈다.

테러 방어는 미국 혼자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테러 조직 정보를 수집하고, 군사작전 기지를 빌리고, 영공 통과권을 얻기 위해 적대적 관계였던 나라에까지 손을 벌려야 했다.


세계엔 테러 말고도 국제 협력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번졌을 때 선진국 다수가 방역에 힘을 보탰다.

에볼라가 세계로 확산되면 남의 문제일 수 없어서다. 현재 대다수 나라가 인간 복제 기술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두 나라라도 허용한다면 규제는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필요한 사람이 그런 나라로 찾아갈 것이다.

지식재산권 보호 정책도 각국이 같은 보조를 취할 때 유효하다.

핵무기 확산 억제를 위한 북핵 제재 역시 모든 나라가 동참해야 성과를 거둔다.


'문제 해결의 세계성'이 두드러진 것이 환경 분야다. 오염 물질은 국경선에 구애받지 않는다.

한국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려면 중국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중국이 한국을 동반자로 생각하는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확산성이 큰 기체다.

지구상 어느 한 곳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 분자는 6개월 후면 전 지구의 모든 공간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

모든 나라가 동참하지 않고선 이산화탄소 농도를 떨어뜨릴 수 없다.


국가 간 관계를 규율하는 글로벌 거버넌스는 만들어져 있지 않다. 행동을 강제하는 시스템이 없는 것이다.

결국 각국의 자발적 양보가 필요하다. 그건 '내가 하면 상대도 할 것'이라는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누군가 자기 이익만 생각해 풀밭에 내놓는 가축 수를 늘려 가면 다른 농민도 덩달아 가축 사육 두수를 늘리게 된다.

그건 파국을 부른다.

지구 생태가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으로 굴러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선 미국처럼 큰 나라가

솔선해야 한다. 모든 나라가 동참하되 책임이 큰 나라부터 나서야 한다는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 원칙이다. 경제 선진국 미국이 자국 의무를 모른 척할 때 중국, 인도가 나설 리 없다.


세계는 상호 의존적(interdependent) 관계를 형성한다.

각국은 경쟁자이기도 하지만 생태 공동체, 경제 공동체를 공유하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동반자 관계는 다음번에 상대방 양보를 받기 위해 이번엔 내가 양보하겠다는 각오가 있을 때 유지된다.

트럼프의 '뭐든지 자국 우선주의'는 세계적 환경·교역 협력 시스템 구축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최강대국 미국이 자기 이익에 매몰돼 이웃의 고충을 무시하는 건 정의(正義)에도 맞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국제 협력 시스템이 손상되면 길게 볼 때 미국에도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