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단색 정권의 위험한 폭주

바람아님 2018. 11. 20. 08:48
문화일보 2018.11.19. 12:30



같은 배경·경험·목표로 무장한

청와대 핵심들 정의 독점 착각

내부의 불만·警報도 확산일로

다양성 상실은 곧 존립 위협

인사 혁신 더 이상 늦어지면

文대통령도 통제력 상실 위험


#1. 공무원 출신인 외교·안보 라인 관계자 A 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유럽 순방 중에 대북 제재 완화를 요청하는 것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 A 씨는 “제재 완화를 언젠가 대북 지렛대로 써야 한다는 점에 대해 외교·안보 라인 내에 공감대가 형성됐고, 미국 측에도 향후 계획을 전달해 어느 정도 설득을 해놓은 상황이었다”며 “그런데 아무런 사전 논의 없이 갑자기 문 대통령이 제재 완화를 얘기했다”고 전했다. 이어 “누군가 막판에 문 대통령의 귀를 잡은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라면 더 이상 해당 부처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고도 했다. 최근 방한해 청와대 핵심 인사들을 두루 만났던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 B 씨는 “지도까지 들고 와 서해평화수역 설정을 포함, 남북 군사합의서에 대해 설명했는데, 90% 자기주장만 했다”며 “우리 의견을 전혀 구하지 않는 등 소통할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고 전했다.


#2. 경제전문가인 더불어민주당 C 의원은 “다수 의원이 여러 차례 청와대에 최저임금 속도 조절 필요성을 건의했는데 전혀 듣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C 의원은 “임금을 무리하게 올리면 시장의 선택은 가격을 올리거나, 직원을 줄이거나, 사업장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며 “경제에는 3가지 다 최악인데 청와대는 요지부동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당 관계자 D 씨는 “국정 최우선 목표였던 고용 상황이 17개월간 추락을 거듭하면서 시장과 재계는 물론 여권 내에서도 문 대통령이 정책 기조의 변화와 관련한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며 “그런데 지난 1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을 유지하겠다고 말했고, 9일 경제 투톱 교체에서 김수현 사회수석을 정책실장으로 임명하는 등 기존 정책 기조를 더 강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는 것을 보고 ‘큰일 났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3. 청와대에 포진해 있는 운동권 출신 참모들과 함께 노동운동과 정치활동을 했던 E 씨는 “문재인 정부 실세들이 초기에 호남과는 끝까지 같이 간다, 적폐청산은 임기 끝날 때까지 한다, 인사는 철저하게 우리 사람 위주로 한다는 세 가지 국정운영 원칙을 이야기했다”며 “지난 17개월여를 되돌아보면 이 원칙을 관철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 씨는 “그들은 노무현 정부 실패 이유가 포용적이고 균형 잡힌 국정 운영을 못 했기 때문이 아니라 수구세력을 완전히 궤멸하고 국정원, 검찰, 사법부, 언론 등 주요 권력기관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며 “피아(彼我)를 명확하게 구분해 적(敵)을 설정하고 권력기관의 인사·예산을 장악해 적을 완벽하게 제압하는 진보세력 특유의 전략·전술이 현 정부 국정운영의 본질이다”고 단언했다.


문재인 정부의 외치와 내치, 국정운영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이런 ‘내부로부터의 경보’는 우려를 넘어 두려움을 자아낸다. 문재인 정부의 문제는 이미 정책의 이념 편향성 차원을 넘어섰다. 해당 분야에서 내공을 쌓은 공무원, 동맹국 미국 정부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전문가,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여당 의원 등의 의견이 배제되는 것은 이제 특별한 경우도 아니다. ‘청와대정부’답게 권력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는 청와대 스태프는 순혈주의를 고수하는 단일성 그룹이다. 이들은 전대협 등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이란 같은 배경을 갖고 있고, 노무현 정부 참여나 참여연대·경실련 등 시민단체 활동이란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보수 궤멸과 권력기관 장악을 통한 진보정권 장기 집권이란 동일 목표를 갖고 있다. 당연히 내부 견제는 사라졌고 ‘나만 정의롭다’는 진보 진영 특유의 선민의식까지 더해져 자신들이 곧 정의고 진리라고 확신한다. 더구나 3권분립의 두 축인 국회와 사법부까지 무력화되면서 단색 정권의 위험한 독주는 파멸이 예정된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다.


생물 다양성이 사라진 생태계는 내부의 자정 능력, 외부 공격으로부터의 방어 능력 부재로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다. 생물 다양성은 유전자(genetic), 종(species), 생태계(ecosystem)의 다양성을 통해 유지된다. 권력의 다양성은 인사를 통해 확보된다. ‘탕평’이 인사의 핵심 원칙인 이유는 다양한 견해를 가진 유능한 인재들이 국정 파탄을 초래할 수 있는 지도자의 독주를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인사 혁신을 늦추면 문 대통령도 단색 정부의 폭주를 멈출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