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윤평중 칼럼] 공화국의 위기

바람아님 2018. 11. 24. 08:01

조선일보 2018.11.23. 03:17


국민을 '敵'·'동지'로 나누고 자기편만 챙기는 국정 私事化로 공화정의 약속은 붕괴 직전
王처럼 사법·입법부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 권력으로 삼권분립·법치주의까지 흔들어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2년 전 촛불 시민들은 행복했다. 역사를 거스른 수구 세력을 헌법 절차에 따라 퇴출시켰기 때문이다. 민심은 국민주권을 실현한다는 자기 효능감(效能感)을 즐겼다. 국가의 일이 기쁨을 주던 공적(公的) 행복감의 시절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일변했다. 국민적 행복감은 허공에 산산이 흩어졌다. 세간에는 쓰디쓴 환멸이 흐른다. 새로운 세상의 열망으로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던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가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문 정부의 추락은 '한 겨울밤의 꿈'을 연상케 할 정도다.


문재인 정부가 민심을 잃고 있는 까닭은 명백하다. 문 대통령의 올해 신년사 제목인 '내 삶이 나아지는 나라'가 좌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활이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게 사람들의 실감이다. 더 나쁜 것은 경제전문가들이 올해보다 내년 상황을 더 바닥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현재 경제 상황이 결코 위기가 아니며 지금의 난국이 보수 정권들 탓이라는 문 정부의 궤변은 국정 무능에다가 언어의 신뢰 상실을 덧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실물경제를 살리지 않고서는 문 정부가 다시 탄력을 받는 건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촛불 2주년의 최대 도전은 문재인 정부 아래서 '공화국 대한민국'이 다시금 중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로 압축된다. 촛불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정신으로 참된 공화국을 꿈꾼 걸 돌이켜보면 비극적 반전(反轉)이다. 문 정부가 촛불 정부를 자처하는 현실이 오히려 공화국의 위기를 키운다. 공화국은 본디 '공공의 것'이며 '국민 모두의 정의로운 나라'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국민을 둘로 가르는 적대(敵對) 정치로 일관한다. 적(敵)과 동지의 이분법으로 불공정을 마다치 않고 자기편만을 챙긴다. 반대 당을 '궤멸'시켜 장기 집권해야 한다고 외치는 반(反)민주적이고 반공화적인 인물이 집권당 대표라는 사실이 상징적이다.


문 정부의 적대 정치는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력과 맞물려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흔든다. 대통령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왕(王)처럼 사법부와 입법부 위에 군림한다. 법률보다 강력한 대통령령(大統領令)이 법치주의와 책임 정치를 왜곡시킨다. 헌법적 근거가 없는 제왕적 청와대 비서실이 헌법 기구인 내각을 압도한다. 공영방송은 권력의 입김에 취약하고 정부 여당은 표현의 자유를 파괴할 '가짜 뉴스 처벌법'을 거론할 정도로 오만하다. '촛불 이후' 재현되고 있는 한국적 권력 정치의 살풍경이다.


공화정은 '왕이 없는 나라'다. 따라서 '촛불 이전'의 제왕적 대통령제로 퇴행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폭주(暴走)는 공화국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여기서 문 대통령 개인의 겸손하고 따뜻한 성품은 문 정부 권력 운용의 본질인 적대 정치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반공화정적 적대 정치야말로 문 정부의 경제 운용 실패를 불러온 주범이다. 세계경제에 밝은 경제 전문가를 홀대하고 실물경제에 무지한 당파적 이데올로그에게 힘을 실어준 게 참혹한 결과를 낳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적대 정치는 진보 세력의 국정 실패로 이어진다. 이는 우리가 지금 보는 것처럼 수구 세력의 정치적 부활을 부추긴다.


선악을 칼같이 나누는 적대 정치는 악의 세력으로 단죄된 쪽의 원한을 무한 증폭시킨다. 그리하여 정치가 적과 동지의 생사를 건 전쟁이 된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새로 집권하는 쪽이 적폐 청산의 칼춤을 휘둘러 반대 세력을 궤멸시키려 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정적(政敵)을 죽여야 자기가 사는 무한 퇴행의 당쟁 정치는 함께 살아가야 할 공화국을 망가뜨린다. 자기편에게만 특혜를 주는 문 정부의 국정 사사화(私事化) 앞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는 공화정의 약속은 붕괴 직전이다.


하지만 촛불의 대의(大義)를 업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실패할 자유가 없다. 진보 정권의 국정 실패가 수구의 반동을 부르는 게 역사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후퇴를 막기 위해서라도 민주 정부는 성공해야만 한다. 이념보다 중요한 게 국민의 삶이다. 국정 성공을 위해서는 반대자들과도 대화하고 누구와도 협상해야 한다. 적대 정치로 멍든 내정(內政)을 통합과 공존의 정치로 혁파해야 한다. 과거로 쏠린 눈을 미래로 돌려야 한다. 미래에의 희망만이 역동적인 공화정을 만든다. 정권의 실정(失政)으로 민중에게 고통만을 안기는 진보는 가짜 진보이자 수구(守舊) 진보다. 문재인 정부는 거창한 한반도 평화를 말하기 전에 침몰하는 경제부터 살려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