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2018.11.24 00:20
북·미 대화 교착상태 빠진 듯
김정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 없어
대화 명맥 유지 통해 실리만 추구
진정으로 통일 원하는지도 의문
트럼프 물러날 때까지 지속될 수도
북·미 대화 교착상태 빠진 듯
김정은, 실질적 비핵화 조치 없어
대화 명맥 유지 통해 실리만 추구
진정으로 통일 원하는지도 의문
트럼프 물러날 때까지 지속될 수도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새로운 형태의 분쟁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동결된 전쟁(frozen war)’으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이 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무력충돌은 없지만 평화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아 언제든지 충돌이 재발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또 정치적 협상이 지속되고 있지만 결코 최종 합의가 도출될 수 없는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현재 진행 중인 북·미, 남북 대화를 살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와 유사한 새로운 외교방식을 고안해냈다고 할 수 있다. 소위 ‘동결된 협상(frozen negotiations)’이다. 끊임없이 만나면서 협상하고 선언도 하지만, 궁극적인 문제 해결엔 실패할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국제사회는 북·미 협상을 보면서 비핵화에 대한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렵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다. 북한이 상징적으로 핵실험장과 미사일 발사장을 폐쇄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면 북핵 협상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대화는 계속 유지되겠지만, 비핵화를 위한 핵심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성과 없는 협상만 지속될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런 협상 과정을 통해 김 위원장은 적지 않은 것을 얻어내고 있다.
첫째, 미국과의 대화를 대북 제재를 약화시키는 빌미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강력한 대북 제재를 원치 않는 중국과 러시아에게 북·미 대화는 대북 제재를 느슨하게 할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둘째, 북한은 북·미 대화가 지속되는 한 미국의 군사적 공격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북한 당국은 지금처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한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셋째, 북·미 대화로 인해 남한과도 편히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만약 북·미 정상회담이 없었다면, 미국 여론은 남북한 간 대화에 대해 지금보다는 더 비판적이었을 것이다.
넷째, 북·미 대화는 북·중 관계 증진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북한은 중국에 정치·경제적으로 막대한 의존을 하고 있고, 대중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베이징 정부는 북한이 군사적 도발 등을 자제할 때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북·미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선 자연스레 북한의 도발이 억제되고 있어, 북·중 관계 증진에도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외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 대화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대북제재 해제와 종전선언일 것이다. 하지만 북·미 대화가 진전될수록 김 위원장은 원치 않는 일도 감내해야 한다. 핵시설 리스트를 공개하고 핵사찰을 받고, 핵무기 폐기에 착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에겐 북·미 대화의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부각돼 보일 수도 있다.
이로 인해 김 위원장은 이런 프로세스를 아주 천천히 진행하기를 원할 것이다. 북한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늦추고, 당초 올해 안에 열릴 것으로 전망됐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이 내년 상반기로 미뤄진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일 수 있다. 실제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아직도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지 못했다. 북한 당국이 비핵화에 관련해 더 많은 요구를 할 비건 특별대표를 만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이다. 북·미 대화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이 현재 원하는 것은 협상을 중단하지 않은채 동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이를 고수할 수도 있다.
남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판문점 선언은 “통일로 향하는…긍정적인 추동력”을 언급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과 북한 지도부가 통일을 진정으로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통일이 될 경우 김정은 체제의 유지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은 대화 과정에서 남한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에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도로 및 철도 보수 등 경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7개월이 지났지만 약속했던 전면적인 남북 간 인적 교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 남북한이 2020년 여름올림픽에 단일팀으로 참가하고, 2030년 여름올림픽을 공동 개최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지난달 예정됐던 북한 예술단의 서울 공연 무산을 봐도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와 ‘남북 통일’이라는 웅대한 꿈에 대해 열띤 논의를 해왔다. 그러나 두 목표를 위한 여정은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거의 답보상태에 빠져있다. 북한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두 여정은 각각의 최종 목적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목적지로 이끌어줄 두 개의 강줄기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현재 진행 중인 북·미, 남북 대화를 살펴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와 유사한 새로운 외교방식을 고안해냈다고 할 수 있다. 소위 ‘동결된 협상(frozen negotiations)’이다. 끊임없이 만나면서 협상하고 선언도 하지만, 궁극적인 문제 해결엔 실패할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국제사회는 북·미 협상을 보면서 비핵화에 대한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렵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다. 북한이 상징적으로 핵실험장과 미사일 발사장을 폐쇄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면 북핵 협상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대화는 계속 유지되겠지만, 비핵화를 위한 핵심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성과 없는 협상만 지속될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런 협상 과정을 통해 김 위원장은 적지 않은 것을 얻어내고 있다.
첫째, 미국과의 대화를 대북 제재를 약화시키는 빌미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강력한 대북 제재를 원치 않는 중국과 러시아에게 북·미 대화는 대북 제재를 느슨하게 할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둘째, 북한은 북·미 대화가 지속되는 한 미국의 군사적 공격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북한 당국은 지금처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한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셋째, 북·미 대화로 인해 남한과도 편히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만약 북·미 정상회담이 없었다면, 미국 여론은 남북한 간 대화에 대해 지금보다는 더 비판적이었을 것이다.
넷째, 북·미 대화는 북·중 관계 증진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북한은 중국에 정치·경제적으로 막대한 의존을 하고 있고, 대중 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베이징 정부는 북한이 군사적 도발 등을 자제할 때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북·미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선 자연스레 북한의 도발이 억제되고 있어, 북·중 관계 증진에도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외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 대화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대북제재 해제와 종전선언일 것이다. 하지만 북·미 대화가 진전될수록 김 위원장은 원치 않는 일도 감내해야 한다. 핵시설 리스트를 공개하고 핵사찰을 받고, 핵무기 폐기에 착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에겐 북·미 대화의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부각돼 보일 수도 있다.
이로 인해 김 위원장은 이런 프로세스를 아주 천천히 진행하기를 원할 것이다. 북한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을 늦추고, 당초 올해 안에 열릴 것으로 전망됐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이 내년 상반기로 미뤄진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일 수 있다. 실제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아직도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지 못했다. 북한 당국이 비핵화에 관련해 더 많은 요구를 할 비건 특별대표를 만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이다. 북·미 대화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이 현재 원하는 것은 협상을 중단하지 않은채 동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이를 고수할 수도 있다.
남북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판문점 선언은 “통일로 향하는…긍정적인 추동력”을 언급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과 북한 지도부가 통일을 진정으로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통일이 될 경우 김정은 체제의 유지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은 대화 과정에서 남한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에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도로 및 철도 보수 등 경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7개월이 지났지만 약속했던 전면적인 남북 간 인적 교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 남북한이 2020년 여름올림픽에 단일팀으로 참가하고, 2030년 여름올림픽을 공동 개최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지난달 예정됐던 북한 예술단의 서울 공연 무산을 봐도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와 ‘남북 통일’이라는 웅대한 꿈에 대해 열띤 논의를 해왔다. 그러나 두 목표를 위한 여정은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거의 답보상태에 빠져있다. 북한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두 여정은 각각의 최종 목적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목적지로 이끌어줄 두 개의 강줄기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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